'폐기/둥둥 Book소리'에 해당하는 글 43건

어떻게 이 책을 골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헝가리출신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5년에 걸쳐 발표한 세권의 책.

이틀만에 마지막장을 넘겼을 때 '아~' 탄성이 나왔다.



전쟁과 쌍둥이를 둘러싼 완벽한 비극.

상중하 각권이 독자적으로 완결된 구조다 써져있지만

역시 순서대로 읽어야 무릎을 친다.

상을 읽고나서 "지독하군. 그런데 야하네"

중을 읽고나서 "뭐야, 완전히 뒤집히는데"

하를 읽고나서 "그랬구나 근데 그런거야?"



'우리', '그', '나'가 들려주는 세가지 거짓말.

감탄, 감탄, 감탄이었다.
















'폐기 > 둥둥 Book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이름은 뽈그작작?  (8) 2005.02.10
다빈치 코드, 뒤늦게 뽑다  (14) 2005.01.23
얼굴보다 말과 글이 아름다운 여자  (15) 2005.01.09
곁길로 빠진 책읽기의 진수  (17) 2005.01.02
그녀는 나의 책갈피  (32) 2004.12.13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인도 케랄라주의 깡촌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가, 영화작가, 심지어 무용강사로 살다가

30대 중반에 발표한 첫 소설로 인도를 대표하는 스타가 되었던 사람.

이후 '기괴할만큼 성공적인' 사람으로 인기를 누리다가

대형댐 건설을 반대하는 <더 큰 공공선> 등

몇몇 정치적 에세이 이후에

'작가-활동가'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배척당하며

인도 대법원에 기소된 사람.

(죄목은 '법정모독죄'였다)




1997년 첫 소설 <작은 것들의 神>으로 영국의 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정치 에세이 모음집

<9월이여, 오라>.

책을 손에 쥐었던 것은 지난해 여름이고,

책 제목에 맞추어 9월부터 가방에 넣어다녔지만

쥐었다 놓았다 하며 두어편 읽다가 던져놓고

새해들어 재도전해야했다.

조그맣고 얇은 책이라 가볍게 본 것이 패인.

(자꾸 다른 책들과 함께 읽기를 시도하다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그녀는 커다란 성공을 손에 쥔채 1년여의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와

이내 가진자들 사이에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우연히 가진자의 부를 순환시키고 있는 파이프에 구멍을 뚫어' 

그 거대한 파이프에서 나오는 엄청난 은화들에 상처입지 않을까,

자칫하면 자신의 심장마저 은으로 변해버릴 것을 걱정하던 그녀는

이내 그녀의 펜으로 '저항의 정치'를 시작한다.




현상을 보고서 묵인하는 것도 하나의 의사표현이기에

그녀는 입다물기를 거부한다.

비폭력 저항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간디를 배출해놓고

그 반세기 뒤에 핵실험을 하는 나라,

광케이블을 까는 인부들이 촛불켜고 일하는 나라,

3억이 문맹인 나라, 인도에서 

작가로 존재하는 사람의 의무는

세상을 향해 '늘 아픈 눈을 뜨고' 있으면서

그것을 글로 표현해야한다는 것.




그녀는 싸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인도 민중을 짓밟는 높으신 분들과,

그리고 

석유나 먹을 것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며

무역봉쇄와 경제제재를 통해 민중들을 굶기다가

직접 무장시키고 지원하며 길러왔던 독재자들을 타도해야 한다며

미사일을 쏘고 난리 부르스를 추며 전쟁을 일으키는 

'부시 이류'(그녀가 부르는 조지 부시 2세의 애칭)의 나라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와...




여기저기 기고한 글들과 여기저기서 강연한 글들이 모아져서

겹치는 이야기가 많은 것이 흠이지만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그녀의 입담은

더이상 시원할 수 없다.

더불어, 매우 유머러스하다.




하나만 예를 들자.

그녀가 보는 '이라크 해방작전'은 이렇다.

"지금부터 달리기 시합을 하자,

그러나 먼저 당신의 다리부터 분질러놓고 하자"




안되겠다 하나만 더 예를 들자.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체포했다고 박수를 치고, 그래서 추후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점령이 정당한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보스턴 살인교살자'(1960년대부터 체포 직전까지 13명의 백인

여성들을 모두 잔인하게 목졸라 죽인 유명한 연쇄 살인범

앨버트 드 살보)의 내장을 난도질했다고

'난자범 잭'(1888년 이후 주로 런던 이스트엔드의 창녀들을

무자비하게 난자하며 다섯번 연속 살해하였으나 끝내 잡히지않았던

영국의 연쇄살인범)을 우상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지난 사반세기 동안 저 교살자와 난자범은 동업자였습니다.

그들의 싸움은 집안 싸움입니다.

그들은 더러운 거래를 놓고 다툰 사업 파트너입니다.

잭이 최고경영자입니다."

- '새로운 미국의 세기' 중에서




내 눈에 보이는 그녀는

인도의 체 게바라요, 인도의 지율스님이다.

아니, 쿠바혁명의 성공 후에

갈곳없는 사회주의를 붙들고 고민했던 체 게바라보다

도롱뇽의 친구 자리를 버리지못하고 생명을 건 지율스님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기에.




부럽다, 그리고 부끄럽다.




'폐기 > 둥둥 Book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빈치 코드, 뒤늦게 뽑다  (14) 2005.01.23
거짓말 속의 거짓말 속의 거짓말  (13) 2005.01.12
곁길로 빠진 책읽기의 진수  (17) 2005.01.02
그녀는 나의 책갈피  (32) 2004.12.13
책에 봐라~  (18) 2004.12.11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

"진실만이 당당하다"고 외치며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꿈을 향해

고독하게 싸웠던 한 사내의 일대기를

오직

<왜 그는 재혼했는가>를 궁금해하며 보았다면

38년 전에 죽었던 사내가 가뿐 숨 들이쉬며 일어나

제 머리통을 휘갈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중간쯤에서 그의 일기를 통해 알게 된 여성관은 이렇습니다.

"여성은 혁명이라는 과업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은 가장 힘든 일, 즉 남성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흔히 말하는 부대 안에서의 성(性)간의 갈등을 믿지 않는다. 험하디험한 게릴라 생활에서도 여성은 자신들의 성에 적합한 자질을 보여줄 뿐 아니라 남성들과 동등한 몫을 해낸다. 비록 여성이 육체적으로는 남성보다 허약하다고 하지만 끈기면에서는 남성을 훨씬 압도한다. 따라서 여성은 혁명에서 아주 중대한 임무들을 제대로 완수해낸다. 이를테면 적진에 있는 서로 다른 부대들간의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메시지나 자금 등의 전달 여하에 혁명의 성패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심한 억압하에서도 여성은 남성보다 덜 충동적이다. 여성에게 유리한 점이 한가지 더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욱 유연하게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적의 주의와 경계심을 약화시킨다..."




여성의 역할을 존중하는 성차별 반대자였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바로 그 다음 부분에 덧붙여지는 부분이 이렇습니다.


그러면서도 체는 전래의 청교도주의를 배격하려 노력한다

"남자가 한평생 한 여자하고만 살아야 한다고 어느 누구도 정해 놓은 바 없다. 이 제한을 스스로에게 부과해 놓은 동물은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더러는 몰래, 더러는 보란 듯이 이를 어기곤 한다. 우리는 이 점에 관해서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규율에 따라 행하는 행동이 오히려 편협한 사회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상 각자의 삶이 사회 전체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때 누가 그 첫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가 혁명이 성공하자마자

일다 대신 알레이다를 품에 안아야했던 이유를

오직 이 부분에서 밖에 엿볼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이타적이고 

자신을 버려서라도 라틴 아메리카를 해방시키려한 애썼던 그가

자기 안에 혁명의 씨앗을 키워준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것에

매우 의문을 품었었는데

돌을 던질 용기도 없이

그저 꼬리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주마간산으로 읽어내려간 668페이지.

연말 망년회와 감기 투병생활의 산악지대를 헤매느라

고지점령에 거의 3주가 걸렸습니다.

100% 완벽하지는 않지만 매우 존경할만한 사람이고

그대신 읽는 이를 주눅들게하기도 하는군요.





여자, 여자, 여자... 하며 곁길로 빠져버린 책읽기.

제가 어련하겠습니까...


 



'폐기 > 둥둥 Book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짓말 속의 거짓말 속의 거짓말  (13) 2005.01.12
얼굴보다 말과 글이 아름다운 여자  (15) 2005.01.09
그녀는 나의 책갈피  (32) 2004.12.13
책에 봐라~  (18) 2004.12.11
둥둥~ Book소리  (2) 2004.11.15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

내년부터 쓰려고 했던 다이어리를 꺼내

(선물해주신 ㅂ선배에게 감사를...)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 별다방에서 혼자 읽은 책의 페이지를 적어두면서

갑자기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검색어는

책, 일기, 별다방, 콩다방, 안들려... 등등이다.

아마도 오늘은 책과 일기와 별다방의 합동공작인듯.




사실 일기를 쓰다니, 게다가 사진을 붙이다니 놀랄 일이다.

게다가 일기를 스캔해서 올릴 생각을 하다니 더 놀랄 일이다.

허나 원래 마음이 동하는 대로 하는 게 블로그질 아니던가.




(사진은 사실 일기장이 시킨 거다.

영수증이나 사진을 붙이라고 칸도 커다랗게 그려져있었다.

그녀가 초상권을 주장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갑자기 그녀에게 보고하고 싶어졌다.

"나는 시오노 나나미의 <내친구 마키아벨리>,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무라까미 하루끼의 <먼 북소리>를 거쳐 지금 <체 게바라 평전>이야.

지금 니 가방 속엔 무슨 책 들었냐?"


'폐기 > 둥둥 Book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굴보다 말과 글이 아름다운 여자  (15) 2005.01.09
곁길로 빠진 책읽기의 진수  (17) 2005.01.02
책에 봐라~  (18) 2004.12.11
둥둥~ Book소리  (2) 2004.11.15
쏘뒝의 사실은...2  (28) 2004.10.15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
오늘은 Che입니다.

체게바라 자서전 껍데기를 보고 그렸어요.

조카가 왜 그림 안그리느냐고 자꾸 뭐라고 해서

연필로 끄적끄적했습니다.

오늘은 안보고도 누군지 맞추겠다, 그죠?



[NIKON] SQ (1/6)s iso70 F3.9


'폐기 > 둥둥 Book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곁길로 빠진 책읽기의 진수  (17) 2005.01.02
그녀는 나의 책갈피  (32) 2004.12.13
둥둥~ Book소리  (2) 2004.11.15
쏘뒝의 사실은...2  (28) 2004.10.15
또 만났네 또 만났어, 파인만씨.  (14) 2004.10.02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
요즘 Book소리가 뜸했지요.

한달도 넘게 <내친구 마키아벨리>를 읽고 있습니다.

친구 사귀는 게 오래걸린다구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게으른 것은 사실이에요.

침대에서 책읽으면 바로 잠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외에도

피렌체를 헤매다 말고 자꾸 딴길로 빠진 핑계가 있답니다.



한주는 바람맞고
(날씨를 바꾸는 요술쟁이 바람/어린이책이라서 링크 안함)

한주는 풍뎅이랑 놀다가 
(풍뎅이 동쓰의 즐거운 꽃밭/상동)

한주는 러시아마피아에 쫓기다가 (굿모닝 러시아)
http://www.khan.co.kr/section/art_view.html?artid=200411051703361&code=900308

또 한주는 화가를 쫓아다녔지요. (고흐)
http://www.khan.co.kr/section/art_view.html?artid=200411121717561&code=900308



어린이책은 금방 읽지만

어른책은 하루이틀동안 죽도록 읽어야 하니 힘들어요.

수요일 저녁과 목요일 아침에 달달달 하고나면

며칠간 만화책 외엔 손에 들지않게 됩니다.



그래도 서평을 맡으면 좋은 점.

평소 읽는 속도나 집중력과 비교한다면 가공할만한 파워로

어떻게든 새책 한권을 읽어낸다는 점이죠.


 
아참, 오늘 아침에 전화가 왔어요.

"임**기자십니까, KBS 조재익기잡니다."

"네, 안녕하세요." - 이때까지 누군지 몰랐음.

"제 졸고에 대해 기사를 잘 써주셔서..."



앗, <굿모닝 러시아>의 필자였습니다.

이름도 못외고 있다가 깜짝 놀랐답니다.



'폐기 > 둥둥 Book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는 나의 책갈피  (32) 2004.12.13
책에 봐라~  (18) 2004.12.11
쏘뒝의 사실은...2  (28) 2004.10.15
또 만났네 또 만났어, 파인만씨.  (14) 2004.10.02
보통씨의 '여행기술' 엿보기  (24) 2004.09.14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

사내에 잘못 소문난 것이 하나 있다. 

"임모씨가 입사 이후에도 수능 '수리탐구영역'을  풀어서 맞췄다더라"



윗 문장에서 '다'에 주목하길 바란다.

나는 시험지를 '다' 풀었던 일이 없다.

입사 첫해 수능 답안지를 신문화하는 과정에서

기다리기 심심해서 딱 한페이지 풀었다.
 
그 페이지에서는 오답을 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나

3점, 4점짜리에선 가물가물한 공식들을 소환해야 하는 고로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어려서는 수학에 뛰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때 산수경시반 6명에 뽑혀서 훈련받고

일본경시대회 문제로 최종관문을 통과한뒤 두 명이서 대회에 나갔다.

같이 출전한 친구가 내가 실수한 문제들을 맞췄다기에 불안해서 잠못이뤘지만

내가 1등이었다.



중3때도 한번 수학경시대회에 나갔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5등 정도 했던가보다.

(여기서부터 실력이 떨어져가는 걸 알수 있다.)



고등학교때(아시다시피 과학고).

수학천재는 도처에 널려있었다.

어려운 문제 두개 내놓고 "현상금 만원" 하는 수업.

풀어도 안풀렸고 기분 나빴다.

점점 수학과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종합성적은 상위권이었으나

비슷한 점수대의 아이들보다 수학은 떨어지고 영어와 논술이 앞서는 기현상.

그렇게 나의 수학시대는 끝났다.



지금 나의 수학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언니는 나를 백화점 세일마다 달고다니면서

"저거 20프로 할인하면 얼마냐, 아까 거기꺼는 얼마였냐"하며

인간계산기로 활용한다.

지금도 동료 최모기자는 "3만에이커는 몇평이냐"고 묻는다.

그렇다. 곱하기 귀차니즘이 적다는 정도가 지금 내 수학실력의 전부다.



"산수 말고 수학이 실생활에 쓸모가 있더냐"
 
한참이나 수학과 가까운 사이였던 나도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그 쓸모없던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아마 아직도 수학과 친했을지 모르겠다.



900페이지가 넘지만 "이 두꺼운 책이 어찌 쉽냐"고 하시지 말라.

타겟이 고등학생이고, 그들을 위해 어려운 것은 대충 넘어간다.

술술 읽히는 교양서와 수학책의 짬뽕이다.

'수학'이라는 두 글자에서 마음에 생기는 진입장벽만 넘어달라.

그게 내수준이다.
 





<수학 바로보기> 링크는 요기!
http://www.khan.co.kr/section/art_view.html?artid=200410151638451&code=900308

'폐기 > 둥둥 Book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에 봐라~  (18) 2004.12.11
둥둥~ Book소리  (2) 2004.11.15
또 만났네 또 만났어, 파인만씨.  (14) 2004.10.02
보통씨의 '여행기술' 엿보기  (24) 2004.09.14
편집기자 분투기?  (20) 2004.09.11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

추석 전전주 목요일였던가요, 책담당선배가 조용히 저를 부르시더니 하시는 말.

"소정씨, 이 책 말야. 서평으로 쓸 수 있을지 검토해줄래?"

보통은 마감 이틀전에 책을 받게 되는데 1주일전에 주시다니...

바짝 긴장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파인만의 물리학강의. 전설의 빨간책으로 유명하죠. (서점에 가보니 회색바탕에 가운데만 빨간 페이퍼북-으로 분류해놨던데 사실 이것도 하드커버-도 있더군요. 껍데기가 여러가지인 모양이에요.)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 여느 대학교재와 두께싸움을 해도 대충 비기기는 할 부피입니다. 아마도 원서와 같은 편집스타일을 고수하면서 한글의 한계상 더 두꺼워진 듯해요. (물론 공학수학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건... 정말 국어대사전과 겨루려고 덤비는 책입니다. 만약 번역이라도 한다면 그건 오오오~ @_@)


처음엔 '물리학 하는 사람들은 이미 원서로 사봤을텐데... 이게 대중서가 될 수 있나?' 하면서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도자료를 보니까 이 책 판권계약 하나만을 위해 작은 출판사 하나가 몇년동안이나 해왔던 노력이 너무 절절한 거에요. 


판권 경쟁 자체는 치열하지 않았는데 그쪽에서 출판사측에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하는 바람에 몇년동안 죽도록 수학/과학 책만을 펴냈더군요. 사실 파인만의 책들도 말랑말랑한 것은 다른곳에서 출간했지만 조금 딱딱하다 싶은 책은 다 이 출판사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기말고사를 앞둔 대학생처럼 책과의 혈투를 벌여야만 했습니다. 며칠은 출퇴근길에 들고다녀도 보고, 며칠은 침대에 엎드려 샤프들고 졸음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범위를 다 공부하지 못하고 평균을 목표로 시험을 치렀던 학창시절의 제가 순식간에 환골탈태할 수는 없죠. 부끄럽습니다만 다 읽지 못했습니다.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이야기>를 통해 일부를 미리 읽어둔 셈인데도 불구하구요. 


그렇지만 오타도 몇군데 잡아가면서 정말 열심히 읽었습니다. 파인만의 진짜 매력은 그의 강의에서 나온다는 걸 깨달았어요. '농담도 잘하고' '남들이 뭐라하건' 당당했던 파인만도, 암과 싸우면서 '투바'에 가려던 열정적인 파인만도 깨어있는 '선생 파인만'을 이길 수 없었어요.


어느새 파인만 팬클럽 경향신문 지부장이 되어버린 저였습니다. 벌써 제 꼬임에 넘어가 파인만을 사들이고 있는 사람이 최소 두명입니다. 크하하핰~





조악한 서평은 여기
http://www.khan.co.kr/news/artview.html?artid=200410011657561&code=900308



p.s. 어떤 선배는 제게 "이건 읽는 사람에게 열패감을 주는 기사야"라며 언짢아하시더군요. 이 책이 어떻게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냐는 거에요.

제가 본 <파인만의 물리학강의>는 이래요. '심리적 진입장벽만 넘으면, 즉 1장, 2장...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꽤 이해할 수 있다.' 

주제에 따라서 10%만 이해할 수도 있고 100% 이해할 수도 있는거죠. 파인만의 관심사에 따라 어려운 주제들도 톡톡 튀어나왔으니 쉽게 설명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요.

어디어디 기사를 보니 "중학교 3학년이면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고 써놓으셨는데 글쎄요. 저도 중3때 어느정도 수준이었는지 기억이 안나서 그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실제로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설명하거든요. 서문에서 학생들이 이러이러한 것은 알고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강의했다고 밝히지만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이과과정을 마쳤다면 "그런건 저도 알아요"라고 대들 정도는 된단 말이죠. (저의 수준을 딱 거기로 맞출 수 있겠습니다. 고등학교 이과출신. 공대졸업 치고는 비리비리하므로...)

여튼 그래서 저는 그렇게 썼습니다.

여기까지 '열등감과 패배감을 줄지도 모를' 기사에 대한 변명이었습니다.

'폐기 > 둥둥 Book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둥둥~ Book소리  (2) 2004.11.15
쏘뒝의 사실은...2  (28) 2004.10.15
보통씨의 '여행기술' 엿보기  (24) 2004.09.14
편집기자 분투기?  (20) 2004.09.11
종합선물세트의 비밀  (15) 2004.08.19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