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전주 목요일였던가요, 책담당선배가 조용히 저를 부르시더니 하시는 말.

"소정씨, 이 책 말야. 서평으로 쓸 수 있을지 검토해줄래?"

보통은 마감 이틀전에 책을 받게 되는데 1주일전에 주시다니...

바짝 긴장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파인만의 물리학강의. 전설의 빨간책으로 유명하죠. (서점에 가보니 회색바탕에 가운데만 빨간 페이퍼북-으로 분류해놨던데 사실 이것도 하드커버-도 있더군요. 껍데기가 여러가지인 모양이에요.)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 여느 대학교재와 두께싸움을 해도 대충 비기기는 할 부피입니다. 아마도 원서와 같은 편집스타일을 고수하면서 한글의 한계상 더 두꺼워진 듯해요. (물론 공학수학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건... 정말 국어대사전과 겨루려고 덤비는 책입니다. 만약 번역이라도 한다면 그건 오오오~ @_@)


처음엔 '물리학 하는 사람들은 이미 원서로 사봤을텐데... 이게 대중서가 될 수 있나?' 하면서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도자료를 보니까 이 책 판권계약 하나만을 위해 작은 출판사 하나가 몇년동안이나 해왔던 노력이 너무 절절한 거에요. 


판권 경쟁 자체는 치열하지 않았는데 그쪽에서 출판사측에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하는 바람에 몇년동안 죽도록 수학/과학 책만을 펴냈더군요. 사실 파인만의 책들도 말랑말랑한 것은 다른곳에서 출간했지만 조금 딱딱하다 싶은 책은 다 이 출판사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기말고사를 앞둔 대학생처럼 책과의 혈투를 벌여야만 했습니다. 며칠은 출퇴근길에 들고다녀도 보고, 며칠은 침대에 엎드려 샤프들고 졸음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범위를 다 공부하지 못하고 평균을 목표로 시험을 치렀던 학창시절의 제가 순식간에 환골탈태할 수는 없죠. 부끄럽습니다만 다 읽지 못했습니다.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이야기>를 통해 일부를 미리 읽어둔 셈인데도 불구하구요. 


그렇지만 오타도 몇군데 잡아가면서 정말 열심히 읽었습니다. 파인만의 진짜 매력은 그의 강의에서 나온다는 걸 깨달았어요. '농담도 잘하고' '남들이 뭐라하건' 당당했던 파인만도, 암과 싸우면서 '투바'에 가려던 열정적인 파인만도 깨어있는 '선생 파인만'을 이길 수 없었어요.


어느새 파인만 팬클럽 경향신문 지부장이 되어버린 저였습니다. 벌써 제 꼬임에 넘어가 파인만을 사들이고 있는 사람이 최소 두명입니다. 크하하핰~





조악한 서평은 여기
http://www.khan.co.kr/news/artview.html?artid=200410011657561&code=900308



p.s. 어떤 선배는 제게 "이건 읽는 사람에게 열패감을 주는 기사야"라며 언짢아하시더군요. 이 책이 어떻게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냐는 거에요.

제가 본 <파인만의 물리학강의>는 이래요. '심리적 진입장벽만 넘으면, 즉 1장, 2장...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꽤 이해할 수 있다.' 

주제에 따라서 10%만 이해할 수도 있고 100% 이해할 수도 있는거죠. 파인만의 관심사에 따라 어려운 주제들도 톡톡 튀어나왔으니 쉽게 설명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요.

어디어디 기사를 보니 "중학교 3학년이면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고 써놓으셨는데 글쎄요. 저도 중3때 어느정도 수준이었는지 기억이 안나서 그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실제로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설명하거든요. 서문에서 학생들이 이러이러한 것은 알고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강의했다고 밝히지만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이과과정을 마쳤다면 "그런건 저도 알아요"라고 대들 정도는 된단 말이죠. (저의 수준을 딱 거기로 맞출 수 있겠습니다. 고등학교 이과출신. 공대졸업 치고는 비리비리하므로...)

여튼 그래서 저는 그렇게 썼습니다.

여기까지 '열등감과 패배감을 줄지도 모를' 기사에 대한 변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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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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