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가까워오면 근처 슈퍼들은 선물 진열장이 되곤 했다. 우리집의 오른쪽, 왼쪽, 바로 건너편까지 모두 슈퍼였다. 과일이며 참기름이며 참치캔이며 종류도 많았다. 그러나 내눈엔 오로지 빨간 포장지와 리본에 감추어진 해*, 롯*, 크**, 오** 종합선물세트들 뿐.

단 한번이라도 부모님이 종합선물세트를 사주신 적이 있었던가. 10번도 넘게 돌이켜보지만 그런 기억은 없다. 하긴 성적이 오르면 무엇을 사주신다는 공약도, 생일선물이라는 개념조차도 없었던 것이 당시 집안가풍이라면 할말 다했지.


딱 한번인가 과자세트가 굴러들어온 적이 있었다. 누가 사들고 왔는데 아버지는 다시 돌려보내려고 했다. 네남매가 온몸으로 막았다. 

뚜껑을 열고보니 기대와는 달랐다. 평소 눈길이 아에 가지않던 종류도 있고, 장난감이나 예쁜 편지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었다. 

더욱 황망했던 것은 하루도 못가 바닥나고 말았다는 것. 어린 마음에 먹고남은 과자껍질을 쓰레기통까지 뒤져서 모았다. 막상 모아두니 쓸데가 없었다. 하다못해 가격을 더해봤다. 세트 가격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더더욱 상처였다.

그래도 명절만 다가오면 나는 설렜다. 나 혼자에게만 뚝 떨어지는 과자세트를 기대하며 크리스마스에 양말을 걸고, 설과 추석 며칠전부터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쳤다.



생뚱맞게 이 이야기를 왜 했는고 하니... 사랑에 관한 단편소설의 종합선물세트 '연애소설' 때문이다.

연애소설 한번 안읽어본 사람이 있을까만은 이책은 단순히 연애소설이 아니라 다분히 宴, 哀, 疎, 說의 모음이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와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부터 궁금했지만 결심하지 못했던 배수아의 <여점원 아니디아의...>, 은희경의 <타인에게 말걸기>까지... 시대를 초월해 모든 족속을 기쁨과 슬픔과 소외와 담론으로 몰아넣는 사랑이라는 놈을 말한다. 

희미하게나마 사랑이라 이름붙일 수 있는 감정을 한구석이라도 드러내지 않은 소설이 세상에 있을까 싶지만, 그저 종합선물세트마냥 작가들의 대표단편을 모아놓음에 불과하여 돈주고 사기 아깝지만, 한때 유행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듯 지하철에서 짬짬히 읽다 접어두어도 그저 어느 순간에는 사랑의 기억들을 더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