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사람이 있다. 

인도 케랄라주의 깡촌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가, 영화작가, 심지어 무용강사로 살다가

30대 중반에 발표한 첫 소설로 인도를 대표하는 스타가 되었던 사람.

이후 '기괴할만큼 성공적인' 사람으로 인기를 누리다가

대형댐 건설을 반대하는 <더 큰 공공선> 등

몇몇 정치적 에세이 이후에

'작가-활동가'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배척당하며

인도 대법원에 기소된 사람.

(죄목은 '법정모독죄'였다)




1997년 첫 소설 <작은 것들의 神>으로 영국의 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정치 에세이 모음집

<9월이여, 오라>.

책을 손에 쥐었던 것은 지난해 여름이고,

책 제목에 맞추어 9월부터 가방에 넣어다녔지만

쥐었다 놓았다 하며 두어편 읽다가 던져놓고

새해들어 재도전해야했다.

조그맣고 얇은 책이라 가볍게 본 것이 패인.

(자꾸 다른 책들과 함께 읽기를 시도하다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그녀는 커다란 성공을 손에 쥔채 1년여의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와

이내 가진자들 사이에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우연히 가진자의 부를 순환시키고 있는 파이프에 구멍을 뚫어' 

그 거대한 파이프에서 나오는 엄청난 은화들에 상처입지 않을까,

자칫하면 자신의 심장마저 은으로 변해버릴 것을 걱정하던 그녀는

이내 그녀의 펜으로 '저항의 정치'를 시작한다.




현상을 보고서 묵인하는 것도 하나의 의사표현이기에

그녀는 입다물기를 거부한다.

비폭력 저항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간디를 배출해놓고

그 반세기 뒤에 핵실험을 하는 나라,

광케이블을 까는 인부들이 촛불켜고 일하는 나라,

3억이 문맹인 나라, 인도에서 

작가로 존재하는 사람의 의무는

세상을 향해 '늘 아픈 눈을 뜨고' 있으면서

그것을 글로 표현해야한다는 것.




그녀는 싸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인도 민중을 짓밟는 높으신 분들과,

그리고 

석유나 먹을 것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며

무역봉쇄와 경제제재를 통해 민중들을 굶기다가

직접 무장시키고 지원하며 길러왔던 독재자들을 타도해야 한다며

미사일을 쏘고 난리 부르스를 추며 전쟁을 일으키는 

'부시 이류'(그녀가 부르는 조지 부시 2세의 애칭)의 나라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와...




여기저기 기고한 글들과 여기저기서 강연한 글들이 모아져서

겹치는 이야기가 많은 것이 흠이지만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그녀의 입담은

더이상 시원할 수 없다.

더불어, 매우 유머러스하다.




하나만 예를 들자.

그녀가 보는 '이라크 해방작전'은 이렇다.

"지금부터 달리기 시합을 하자,

그러나 먼저 당신의 다리부터 분질러놓고 하자"




안되겠다 하나만 더 예를 들자.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체포했다고 박수를 치고, 그래서 추후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점령이 정당한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보스턴 살인교살자'(1960년대부터 체포 직전까지 13명의 백인

여성들을 모두 잔인하게 목졸라 죽인 유명한 연쇄 살인범

앨버트 드 살보)의 내장을 난도질했다고

'난자범 잭'(1888년 이후 주로 런던 이스트엔드의 창녀들을

무자비하게 난자하며 다섯번 연속 살해하였으나 끝내 잡히지않았던

영국의 연쇄살인범)을 우상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지난 사반세기 동안 저 교살자와 난자범은 동업자였습니다.

그들의 싸움은 집안 싸움입니다.

그들은 더러운 거래를 놓고 다툰 사업 파트너입니다.

잭이 최고경영자입니다."

- '새로운 미국의 세기' 중에서




내 눈에 보이는 그녀는

인도의 체 게바라요, 인도의 지율스님이다.

아니, 쿠바혁명의 성공 후에

갈곳없는 사회주의를 붙들고 고민했던 체 게바라보다

도롱뇽의 친구 자리를 버리지못하고 생명을 건 지율스님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기에.




부럽다, 그리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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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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