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마쯔리 전야제성 행사가 열리는 7월 16일.

다음날 아침 시가 행진을 할 수레들이 시조 가라스마를 중심으로 늘어서서 등불을 밝히는 '요이야마'가 시작된다.

 

오후 6시가 되면, 가와라마치까지 시조거리 일대가 통제되고,

유가타를 입은 언니들이 쏟아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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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야마라고 해서 뭔가 대단한 일이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길거리 음식을 사먹는 일에 가까웠다.

가게들을 보면 주로 오코노미야키, 오징어구이, 타코야키, 야키도리 등등이 반복된다.

간간히 튜브인형이나 거북이 건지기 놀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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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아니 인형을 짊어진 소녀. 나도 사고팠는데 흑흑.

 

 

 

 

길에서 나눠주는 부채 뒷면을 보면, 수레들이 전시된 위치와 다음날 행진 순서를 알 수 있다.

시조 거리를 중심으로 골목골목 갖가지 모양의 수레가 등불을 밝힌다.

수레를 옆건물과 임시로 연결해놓기 때문에 들어가볼 수도 있는데

남자만 출입하거나 여자만 출입하는 수레도 있고,

남녀 모두 올라가볼 수 있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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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공연이 이어지기도 한다. 주로 피리소리. 이 피리소리는 다음날 아침에도 원없이 들을 수 있다. 

이 사진을 찍는다고 요란을 떨던 김군은 말도 없이 군중 사이를 뚫고 들어갔고

나는 돈 한푼 없는 김군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걱정하며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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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어가고, 가족상봉의 기쁨에 쏘뎅은 술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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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가쿠지까지 신나게 페달을 밟았다.

사실 신이 나진 않았다. 죽도록 더웠다.

걸었으면 아마 포기했을 거라는 게 단 하나의 위안.

 

그렇게 도착한 다이가쿠지였지만 김군은 입장료가 아깝다며 발길을 돌렸다.

다이가쿠지 옆 호수에서 정신을 되찾은 다음 JR역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못내 아쉬워하는 김군.

다른 게 아니라 하루치 비용을 계산했는데 벌써 자전거를 반납하면 아깝다는 거다.

 

순순히 반납하면 도게츠교 아래 원숭이공원에 데려가마, 달랬다.

그곳에 가려면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올라야한다는 이야기는 숨겼다.

원숭이공원은, 교토타워까지 보이는 전망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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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다이가쿠지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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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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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게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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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를 만나러 가는 길. 원숭이 퀴즈 3단계를 맞춰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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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미녀와의 조우. 불행히도 아이는 엄마를 닮지 않았다. 민주적으로 생긴 아빠 탓일가, 의술이 너무 뛰어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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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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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 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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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굴욕. (18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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嵐는 산에 부는 바람, 아지랭이 같은 기운을 뜻하는 남기 람.

그러나 나는 일본 아이돌 그룹 '아라시'를 알았을 때

당연스레 저 한자의 뜻이 폭풍우라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뫼산과 바람풍 사이에서 폭풍우를 만들다니,,, 나는 연금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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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교토 서부에 가면 아라시야마라는 지역이 있다고, 그곳에 멋진 대숲이 있다고 들은 것은 2004년께였나 보다.

그때만 해도 '숨겨진 비경'처럼 들었는데, 그 사이 유명세를 타고도 남았는지

기온 마츠리를 제외하면 이번 일정 중 가장 많은 관광객을 마주친 곳이 바로 아라시야마다.

 

바퀴달린 것은 다 무서워하는 고로, 자전거를 빌린다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너무 더운 날씨에 걷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결론.

안장을 낮추고 낮춰 발이 닿고도 남게 만들어서 타고 다녔더니

뒷모습이 더 불안하다고 남편이 난리.

찻길이 너무 무서워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다보니 나중엔 끌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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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텐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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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힘겨워보이는 인력거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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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도리이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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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바퀴를 굴리고 있는 쏘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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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대 청년의 별명은 이케뽕.

태국 치앙마이 트래킹에서 알게 된 한국인 친구들도 여럿이라고.

 

식당에서 우리가 연거푸 사케를 주문하자, 신기해하는 점원에게 그는 말했다.

"한국에서 사케가 붐인듯 합니다."

그때는 붐이라고 말해도 되는 수준일까 생각했지만,

다녀와서 보니 사케 판매량이 와인을 앞질렀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선하디 선한 청년은 한국에 와본 적도 있고, 관심도 있는 듯 했지만

"문제는 역사다, 이 바보야"의 상황은 우리를 비켜가지 않았다.

하필 우리가 여행중이던 때, 일본과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화중에도 독도가 끼어들었다.

 

빡빡남   " 왜그리 난리인지 모르겠어. 그냥 사이 좋게 공동소유로 하면 좋을 텐데..."         (^_^)  

벌벌녀   "그건 좀,,, 역사와 영토와 온갖 것들이 줄줄이 엮이는 문제라서 말이지..."            (-_-);;;;;; 

 

공동소유라,

그들에겐 나름 양보와 선의일지 모르겠으나 우리에겐 참을 수 없는 단어라는 걸,

그는 알지 못했다.

우리도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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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코네성을 등지고 우측으로 담을 따라 걸으면 캐슬로드가 나온다.

관광객용으로 조성한 느낌이 물씬.

어디서들 오셨는지 다들 양산을 챙겨든 나이 지긋한 여성들로 북적거렸다.

왼쪽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애니메이션 캐릭터 전시관과 아기자기한 식당들이 보였다.

 

고베牛에 이어 오우미(비와코 인근 지방 옛이름)牛를 한번 시도해볼까 했지만

역시나 너무 비쌌다.

결국에는,,,

차슈면과 츠케면(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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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엔짜리 차슈멘. 어여쁜 반숙이 얹혀있다. 냉면은 콩국수의 국물없는 버전같은 맛이었다. 사진이 어디갔나 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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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은 미소(된장)나 쇼유(간장)보다 시오(소금)가 깔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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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표 참조. 웃음은 공짜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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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코 재도전. 1일째(오른쪽, 대체 어느쪽 다리를 든 거냣!)에 비해 완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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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에서 JR 비와코선을 타고 40분 남짓.

히코네역에 내리면 저 멀리 히코네성이 보인다.

일본에 남아있는 성 중에 오리지날로 분류되는 다섯개(?) 중 하나다.

 

전쟁으로 인해 손상되거나 하여 다시 짓지 않은,

옛날 상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성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물론 히메지죠.

규모도 크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니 유네스코 문화유산)

 

다만, 히메지는 내가 다녀왔기 때메 남편은 볼 기회를 상실했다.

게다가 오사카의 상징이라는 오사카성마저 거들떠도 안 봤다.

김군, 꼬우면 니가 스케줄 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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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봐도 규모가 작다. 언덕 위에 있어서 그나마 전망은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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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코가 보인다. 뭐 그럴 수 밖에. 근처에 버드맨 대회 열리는 해변이 있다하여 가볼까 하다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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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한가롭기 때문에 앉아서 놀아도 된다. 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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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코네성의 마스코트. 여기저기 전시되어 있었다. 귀여워보여도 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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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뜰이 상당히 예쁘다. 성 입장권에 정원용이 같이 붙어있다. 합해서 600엔.

성에 올라갔을 때 뜃쪽으로 화살표를 보고 잘 내려와야 한번에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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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털은 죄다 허옇고 머리가슴배에 팔다리까지 비쩍 골아 철지난 곤색 양복이 헐렁거리던 윗학년 수학선생님은 말했다. "공부엔 마스터 플랜이 있어야지, 마스터 플랜."

 

고등학교 1학년이었지만 철도 없고 예의도 없고 마스터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만화영화에서 악당3 따위가 "예스, 마스터"하는 것은 본 것 같아서 주인님의 계획인가보다 생각했다. 웃지마라, 나름 열심히 머리굴린 결과다.

 

master plan. 사전이 알려주기로는 '기본 계획/종합 계획'.

그래 그 영어의 뜻은 그렇다치고 공부에 무슨 계획을 세우란 말이냐. 당시 며칠은 샤프 들고 밥숫가락 들고 베개 끌어안고 고민했지만 그놈의 기본 계획이라는 놈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시간은 흘러가고 대학은 들어가고 기차는 서울로 가고... 그러면 됐지 뭘 고민하고 자시고 하느냐는 결론에 이르렀고 나는 외쳤다. "노, 마스터"

 

 

 

2001년 취직을 했다. 졸업하고 한 9개월 놀았나, 원래 하려던 일은 아니지만 계속 놀기도 망신스럽고 대략 재미있을 듯도 해서 다녀보자 생각했다. 당시 ㅁ사 5년차였던 선배는 계속 시험이나 보라고 말렸지만 오래 놀고앉아있는 것도, 실패하는 것도 익숙지 않아서 그냥 고맙게 직장인이 됐다.

 

입사 첫해엔 휴가가 2박3일. 고향에 다녀오니 끝이었다. 일은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면서 휴가라는 녀석은 일주일 꼬박 채워 받아야 마땅한 줄 알았다. 멀쩡하게 회사다니는 날수를 채워야 하루씩 휴가가 생긴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선배들은 나름 생색을 냈지만 나를 포함한 부서 여동기 셋은 매우 배가 고팠다. 

 

이후 따로 모의한 적은 없지만 우리의 한해 목표는 휴가가 됐다. 2002년 여름휴가부터 우린 경쟁적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처음엔 A는 러시아, B는 싱가포르, 나는 일본 도쿄. 다음해엔 A 스웨덴, B 일본 홋카이도, 나 싱가포르...

 

일이 힘겨울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우리에겐 휴가가 있잖아!" 중간에 B가 결혼하면서 삼각경쟁체제가 붕괴되고 A의 부서는 몇번이고 바뀌었지만 어쨌건 우리는 휴가를 위해 살았다. 한해 휴가를 다녀오면 다음 휴가를 준비하면서 한해를 보냈다.

 

 

 

2006년 5월 24일.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었다. 차장들이 모조리 부장이 되고 기존 부장들은 평소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구석구석 자리로 찾아들어가게 됐다. 회사의 앞날을 위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한편으론 두 눈에 쌍심지를 켜야할 일인지도 모른다.

 

파격인사로 인해 모든 부서의 인원이 줄었다는 것은 남아있는 아랫것들이 사라진 자들의 몫까지 일해야한다는 뜻이다. 곧 월드컵이 다가오는데 내가 일하는 회사는 월드컵 기간에 '뺑이'치는 곳들 중 하나이니 아랫것 한사람 한사람의 중요성이 무척 커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남몰래 추진중이던 결혼 1주년기념 남아공 여행 일정은 월드컵 기간 중에 쏘옥 들어있었을까.

 

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휴가인데, 회사가 나를 고용한 이유는 단지 내게 휴가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은 엄청난 비극이다. 아니 그보다 직장생활 만 5년을 꼬박 채우면서도 이 직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 하나 없이 휴가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은 더 엄청난 비극이다. 그 어느 직장인이 성공이 아닌 휴가만 꿈꾸고 살겠어. 13년전 그 선생님의 말씀처럼 "마스터 플랜이 있어야지"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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