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케이프타운에 새하얀 사막이 있다구요."
 
 
 
서대문 곱창집에서였던가.

여자처럼 상냥하게 말하는 ㅈ씨는

사막을 찾느라 겪었던 우여곡절을 줄줄 읊었다.

당시의 대화를 재구성하면 이렇겠다.
 

내가아는 ㅈ씨"사막을 찾고 있어요."

이름모를 주민"오, 사막? 남아공엔 없어. 북쪽으로 가요. 나미비아로."

내가아는 ㅈ씨"아니에요. 케이프타운에 있다고 들었어요. 새하얀, 새하얀 사막."

이름모를 주민 "새하얀? 아, 아틀란티스 샌듄(sand d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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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구석에도 '사막가는 길' 같은 표지판은 없다.

그저 평범한 흑인마을 아틀란티스에 들어서서 차를 세우고

뚜벅뚜벅 걸어가서 도서관옆 건물의 작은 창구에 "어른셋"을 외쳐야 하는 것이다.

 

1인당 9란드(1란드는 150원 언저리)짜리 노란 표딱지를 들고

근처 시장 한바퀴를 돌고 출발한다는 게

레게머리 따는 노점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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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이면 된다더니 1시간도 넘게 걸려서

지나가는 흑인들이 다 나를 구경하다 웃고 갔다.

가격은 50란드(약 7500원).

보라카이와는 비슷하고 한국보다는 최소 7배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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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쪽 두 사진은 김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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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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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할 것 같은디?"

고3 첫 면담시간에 내게 던지신 그 한마디.

무슨 주문처럼 영어성적만은 쑥쑥 올랐더랬다.

고마웠더랬다.

 

 

"**과학고 제2기 졸업 10주년 기념 사은회"

광주 무슨무슨지구의 관광호텔 2층에 걸린 플래카드.

곳곳에 흩어져있던 선생님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계셨고

한참이나 낯을 가린 후에 찾아뵈었던 그 담임선생님은

반가운 듯 이런 말씀부터 하셨다.

 

"소정이 얘가 *등으로 들어와서 **등으로 졸업났재.

 **하고 니하고 둘이 같이 내 반으로 들어왔는디 니만 확 떨어져브렀냐.

 내가 공대 젤 낮은과 가라고 했재."

샘, 젤 낮은 과는 아니었어요 반박할 일도 아니고

반갑다고 하시는 소리지만 친구들 보기도 민망할 따름.

 

급기야 2차인 노래방에선 따로 불러서 거듭 술을 따라주시며

"내가 니는 기억나는 게 많재. 니 공대 보내놓고 잘못될까봐 미안했었재.

 잘 되갖고 봉께 좋구마. 결혼까지 했당께 더 좋고."라고까지 하셨다.

 

눈물이 나려는 걸 참았다.

나는 잘못 살아온 걸까.

지나간 고교/대학시절을 후회해야 하는 걸까,

그때 공부를 좀더 열심히 했더라면, 다른 학과에 갔더라면 지금 나는 다르게 살고 있을까...

 

 

 

선생님들은 모두

3년간 주야로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의 이름 앞에

성격 같은 것은 남겨두지 않으셨다.

오로지 출신지역을 호처럼,

대학과 학과를 꼬리표처럼 달아놓고 계셨을 뿐.

 

아마 어제를 기점으로

직업이라는 꼬리표가 하나 늘었겠지.

그리고 10년후 다시 뵐 때는

회사 직함들도 하나씩 따라 붙겠거니.

 

이랬거나 저랬거나 반갑고도 씁쓸한 10년만의 만남.

니가 제일 하나도 안 변했다는둥 

아직도 고등학생같다는둥

제일 예뻐했는데 새침하게 지 할말 다 했었다는둥

여러 선생님의 인사들을 뒤로 한채 상처 가득한 밤을 달려오니

우리집은 또 물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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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밑 첨벙첨벙.

하늘이 구멍났나 했더니 우리집 벽에 구멍이 있었다.

 

재개발 예정지라 가을 이사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겁이 나서 열심히 부동산정보를 클릭하고 만다.

 

그러나 아아,

답이 안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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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가 아니라 망토다.

 

 

 

 

p.s. 이제서야 봤는데 한국말 더빙이 이렇게 즐거운 건 처음.

      범인을 콕 찍어버리고 나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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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양희 너무 예쁘지?"

빈소에 걸린 사진을 보며 회사 여동기가 말했다.

 

 

 

스물일곱살의 유치원교사였던 그녀의 동생은

항암치료 네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소화가 잘 안되서 병원에 갔더니 간이 안좋다 하고

간을 더 검사해보니 대장암이 간으로 전이된 것이라 나왔더랬다.

 

길어야 3~6개월이라 하기에 가족은 요양을 생각했지만

동생은 용기있게 항암치료를 택했다.

 

암세포는 동생의 젊음을 먹고 쑥쑥 자랐다.

반면에 동생의 장기들은 거듭된 항암제 투여를 견디지 못했다.

 

 

 

"고통없이 갔어. 몰핀을 놨거든."

하나도 안 울었다는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하나 둘 찾아온 회사 선후배들과 쓴술을 나눠마시고

"웬일이냐, 니가 얼굴이 빨게지고." 소리를 들으며

집에 돌아갔다.

 

처음 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의 불행보다 내자신의 건강부터 걱정했던 사람이

지금 그 죽음을 놓고 울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동생의 그 젊음이 너무 아깝고 안타까워서

무척이나

가슴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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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동창 하나가 싸이에 말을 걸어왔다.

2년쯤 같은 반이었던 '학교 짱'이었는데

뭐 이유없이 사람 패는 놈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오늘은 녀석이 네이트온 친구를 신청해와서 대화가 시작됐다.

그때 내가 선생님이 틀린 걸 지적했다는둥, 여전히 남자답다(?)는둥

칭찬 몇마디를 늘어놓다 말고 대뜸 묻는 것이

 

"너는 초등학교 때 첫사랑이 있었냐"였다.

곰곰 생각해보니

잘 기억도 안 나지만  타지로 전학간 녀석을 좋아했던 것 같았다.

 

"나 그 학교로 전학가기 전에 한 명 있었던 것 같다." 그랬더니

"그래? 너도 그런 게 있었어? 신기하네." 뭐 이런식.

그러는 너는 첫사랑이 누구였냐 되물었더니

 

뭐 이래저래 이야기를 빙빙 돌리는 것이

분위기상 묘했다.

'이건 나 아니면 나랑 친한 친구란 뜻인데...'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6학년 말, 곧 중학교를 간다고 들떠있던 그 때.

쉬는 시간이 되면 복도가 들썩였다.

"누구누구 좀 불러줘."

 

나도 종종 화장실 가려고 뒷문을 열었다

옆반 남자아이들의 스피커 역할을 하곤 했다.

"누구야~ 손님 받아라"

 

친한 친구들도 한번씩 불려나가고

어떤 여자아이들은 두번 세번도 불려나갔지만

그시절 내내 한번도 나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는

그시절 '고백'점프 한번 당하지 못한 나를 좋아한 아이가

하나라도 있었단 이야기가 되어가는 것이었다.

 

뭐 나도 녀석도 결혼한 마당에 그 녀석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지만

어쨌건 0과 1은 존재감부터 다르지 않은가.

기대가 스물스물, 2020배 닳아올랐다.

 

그런데 녀석 자꾸 다른 이야기로 새지를 않는가.

바쁜 업무중에 메신저질을 하는 것도 힘든데

녀석, 어여 고백하면 될 것을 왜이리 뜸을 들여.

 

지쳐서 낼롬 내가 말했다.

"어쨌건 분위기상 니가 좋아한 건 나 아니면 내 친구지 싶은데

편의상 나였겠거니 하고 지나갈란다."

 

그랬더니 녀석이 대뜸

"그게 아니라 사실은 아까 이야기할라고 그랬는데 ***거든."

라는거다.

 

 

 

짜식이, 말할 거면 빨리 말할 것이지.

괜히 업무중에

딴전만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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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나잇살이라 했다.

걱정은 되는데 땀흘리는 운동은 싫었고

결국 물 속에 뛰어들기로 했다.

 

몇년만인지 생각도 않고

수영복을 사고 동네 초등학교 수영장에 등록했다.

전에 한 적 있다 주장하니 초급반에 넣어줬다.

 

드디어 첫 날.

걱정이 많았는지 눈도 일찍 떴는데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감았다.

 

 

 

수영장 도착.

몸을 물로 씻고 새 수영복을 입었다.

머리를 묶고 수영모를 쓰려는데

 

"머리 샴푸하고 몸 비눗칠 하고 들어가는 거에요."

옆자리 아줌마가 샤워하다 말고 딴지를 건다.

"방금 감고 온 머리에요." 대수롭지 않게 받았더니

 

"그래도 감고 비눗칠 하는 거라구요." 화를 내기 시작한다.

"방금 감고와서 젖은 머리라니까요?" 다시 되받았더니

"수영장 오면서 머리 감고 오는 사람이 어딨어요!!! 샴푸 하세요."

 

이 아줌마가... 미쳤나.

"가려워서 감고 왔다구요." 안해도 될 말까지 했는데

"그래도 샴푸하고 샤워하는 거에요. 여기서는!!!!!!!!"

 

갑자기,

아줌마들에게 찍히면 끝이다 싶었다.

비굴하게 머리감는 시늉, 샤워하는 시늉을 했다.

 

 

 

강사들이 보였다. 죄다 남자였다.

"초급반 어디에요?" 했더니 "어디까지 배우셨나요?"다.

평영까지 배웠다고 하니 맨 오른쪽으로 가라고 했다.

 

물에 들어가니 아줌마들이 바글바글.

"다들 어디까지 배우셨나요?" 했더니

"접영 들어갔어요. 여기 다들 중급반 정도 돼요."란다.

 

이런... 겸손하게 처음부터 배우려고 했는데,

이게 아닌데 하고 있었더니 한 아줌마가 말했다.

"내가 여기서 제일 못해요. 자주 안 오거든요."

 

키판 잡고 발차기를 하더니 자유형을 시키더니

평영을 하라고 하고선 강사가 1대1 지도를 시작했다.

내 차례가 오자 한마디 했다.

 

"얼마만에 하시는 거에요?"

얼결에 "2년인가" 했더니 그는 말했다.

"더 낮은 반으로 바꾸셔도 되는데..."

 

 

 

조금 있다 다들 접영을 시작했다.

강사가 또 지도를 하더니 내게 말했다.

"그냥 자유형이나 천천히 하세요."

 

4년전에 분명

접영까지 배우다 말았거늘,

이게 뭐냐고오오오오오~

 

위로가 되는 건 오로지

그 아주머니 뿐이었다.

아, 그 아줌마 안 오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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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운틴 입구까지 갔다가도 케이블카를 못 타는 일도 많다고 했다.

갑작스레 구름이라도 끼면 운행을 안 한다고.

그래서 케이프타운에 사는 한인들은

가족들이 놀러왔을 때도 최소 두번 세번은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Lucky"

케이블카 한방에 오케이.

내부가 빙빙 돌아 모든 방향을 볼 수 있다.

거기까진 매우 좋았다.

 

"지금이 11시 5분전. 넉넉하게 1시에 봐요. 우린 이쪽으로 갈게." ㅈ씨는 말했다.

'넉넉하게'를 믿고 우린 매점에서 노닥노닥 30여분을 보냈다.

길을 나서니 ㅈ씨 가족이 나타났다.

부지런히 한바퀴를 돌아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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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 나타난 모서리. 아래쪽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테이블마운틴은 두 군데로 나눠져 있는데 한쪽 끝에서 내려갔다 올라가면 다른편이에요"

ㅈ씨의 말이 떠올랐고

우리는 주저함없이 건너편 바위산을 올랐다.

 

걷고, 걷고...

색다른 돌과 식물, 그리고 저 너머로 보이는 희망곶.

시계도 안보는지 12시도 지났는데 "굿모닝"하는 사람들과 옷깃을 스치며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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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보면 케이블카 쪽으로 돌아가겠지...

라고 생각한 것이 실수였음을 깨닫는 데에는 무려 1시간이 걸렸다.

"아무래도 케이블카는 저 뒤쪽 저 건물 같어."

우리앞에 놓인 길은 devil's peak 바로 앞으로 걸어내려가는 길.

아무래도 우린,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이쯤되면 제아무리 좋은 풍경도 안중에 없다.

약속시간은 15분 남았는데 우리가 걸어온 길은 1시간,

그곳에서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도 최소 15분이다.

 

휴대폰도 없고 저쪽 전화번호도 모른다.

무작정 걷고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

이 무슨 실롄가 싶어 우린,

 

 

뛰었다.

20분쯤 가자 나는 기운이 없다 했고

30분쯤 가자 김군은 가방이 무겁다 했다.

약속시간 + 25분.

그들을 만나자 다리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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