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할 것 같은디?"
고3 첫 면담시간에 내게 던지신 그 한마디.
무슨 주문처럼 영어성적만은 쑥쑥 올랐더랬다.
고마웠더랬다.
"**과학고 제2기 졸업 10주년 기념 사은회"
광주 무슨무슨지구의 관광호텔 2층에 걸린 플래카드.
곳곳에 흩어져있던 선생님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계셨고
한참이나 낯을 가린 후에 찾아뵈었던 그 담임선생님은
반가운 듯 이런 말씀부터 하셨다.
"소정이 얘가 *등으로 들어와서 **등으로 졸업났재.
**하고 니하고 둘이 같이 내 반으로 들어왔는디 니만 확 떨어져브렀냐.
내가 공대 젤 낮은과 가라고 했재."
샘, 젤 낮은 과는 아니었어요 반박할 일도 아니고
반갑다고 하시는 소리지만 친구들 보기도 민망할 따름.
급기야 2차인 노래방에선 따로 불러서 거듭 술을 따라주시며
"내가 니는 기억나는 게 많재. 니 공대 보내놓고 잘못될까봐 미안했었재.
잘 되갖고 봉께 좋구마. 결혼까지 했당께 더 좋고."라고까지 하셨다.
눈물이 나려는 걸 참았다.
나는 잘못 살아온 걸까.
지나간 고교/대학시절을 후회해야 하는 걸까,
그때 공부를 좀더 열심히 했더라면, 다른 학과에 갔더라면 지금 나는 다르게 살고 있을까...
선생님들은 모두
3년간 주야로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의 이름 앞에
성격 같은 것은 남겨두지 않으셨다.
오로지 출신지역을 호처럼,
대학과 학과를 꼬리표처럼 달아놓고 계셨을 뿐.
아마 어제를 기점으로
직업이라는 꼬리표가 하나 늘었겠지.
그리고 10년후 다시 뵐 때는
회사 직함들도 하나씩 따라 붙겠거니.
이랬거나 저랬거나 반갑고도 씁쓸한 10년만의 만남.
니가 제일 하나도 안 변했다는둥
아직도 고등학생같다는둥
제일 예뻐했는데 새침하게 지 할말 다 했었다는둥
여러 선생님의 인사들을 뒤로 한채 상처 가득한 밤을 달려오니
우리집은 또 물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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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