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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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3년전, 중학교 1학년의 나는 <I'm your baby tonight>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의 LP를 구입했다.
Whitney Houston의 3집,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름대로 큰 맘을 먹었던 것 같다. 당시 용돈이란 개념이 없던 나는 아마 문제집 한두개쯤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앨범 속엔 휘트니휴스턴 팬클럽에 가입신청서도 들어있었다. 티셔츠 운송료조로 동봉하라는 20불이 아까워 사전찾아가며 쓴 신청서를 꼬깃꼬깃 구겨버린 기억이 난다)

처음에 어떻게 그녀를 만났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뽕짝이 아닌 노래는 '책읽는' 거라고 폄하하시는 울아버지가, 80년대에만 해도 흑인음악의 집산지 '모타운 레코드'와 관련된 방송을 보시며 "흑인들 노래는 구성(!)져서 들을만 하다"셨었는데 아마 그 영향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스티비 원더, 라이오넬 리치, 슈프림스의 다이아나 로스에 컨트리 가수들도 종종 입에 올리곤 하셨었는데 지금은 스티비 원더 테입을 갖다바쳐도 안 들으신다.)

당시 영어를 배운지 얼마 안됬던 중삐리는 가사집을 보고 수십번 연습을 해서 대충 흥얼거리게 되고나면 가사를 해석해보느라 사전을 뒤적이곤 했다. 그러다 놀라기를 수십번... (당시 나는, 필독도서라는 김동인의 '감자'나 춘향전을 보고도 그 수위를 감당하지 못해 '이 책을 보았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다'며 얼굴을 붉히던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서 그리 진일보했노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첫눈에 뻑갔다, 냉큼 뛰가 간이고 쓸개고 다 쒜리뽑아 쥐줄테니 불러만도, 내는 오늘밤 니 아~다, 날자 날자꾸나... (I'm your baby tonight)

이럴수가... 이럴수가... 나는 너무 놀랐던 것이다. (요즘은 가요 중에도 이런 가사가 많다. 그러나 그때는 '시간이 멈춘 듯이 미지의 나라 그 곳에서 걸어온 것같은' 그녀를 노래하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듣게 된 노래가 My name is not Susan!
제목에서 삘이 오지 않나? 그렇다. 잠결에 딴여자 이름을 읖조린 것이다.

과거의 여자 중에 하나를 부르며 내몸에 팔을 휘감고있냐, 이런 죽일놈.
걔가 좋으면 가브러라, 아니면 니가 받은 사랑에 존경을 표시하든가.
내가 수잔이냐? 한번만 더 내이름 까먹으면 콱~!

잠자리에서 딴놈이름 불러댔다고 내목을 조를 남편도 없고 '오마담 사랑해'하고 외쳐대면 북어패듯 두드려줄 남편도 없고... (생각해보니 마누라가 더 좋다. 남편이 생기면 마누라라 불러줄테다) 내가 왜 이노래를 떠올리며 중얼대는지 스스로도 추측밖엔 할게 없는 상황이라니 암담하다. 아마도 술자리에서 자꾸 헷소리를 해왔던 기억이 자꾸 가슴을 찔러와서 역시 '입조심은 회사생활의 필수'라는 교훈적이 이야기라도 늘어놓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겠다. 별로 안그럴듯하다. 그래도 이렇게 끝내야겠다. 그녀의 신보 <Just Whitney>를 들으면서 자신에 대한 편견과 뒤틀린 관심에 대해 "뭘봐? 난 그냥 나야"라고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동화되기는 했으나, "그래, 안된다고 말해봐, 내 능력을 보여주마"라고 자신있게 공언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감화되기는 했으나... 왜 갑자기 10년도 더 묵은 노래를 왜 끄집어 냈을꼬.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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