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11월. 그날도 손발이 시리도록 추웠다.

엄마들이 아침 일찍들 기숙사로 찾아오셨고

(전날 올라오셔서 주무신 분들도 많았다.)

기숙사 곳곳이 보글보글 맛있는 냄새로 진동했다.




말하자면 몸보신 시켜서 전쟁터(!)로 내보내는 의식이었는데

우리엄마와 몇몇 분들은

평소 먹어보지도 못했던 '아구탕'을 끓여주셨다.

큼직한 고깃덩이를 골라 떠주시며 잘 먹고 맘편히 다녀오라고...

님(엄마)도 보고 뽕(아구아구~)도 따고...그때까진 아주 좋았다.




고사장은 어느 상업고등학교였는데

우리학교가 있던 곳은 '군'단위라서

인문계고등학교는 딱 한군데, 나머지는 원예고, 종고, 상고...

따라서 시험보러온 아이들 중에

책펴놓고 공부하는 아이들도 많지 않았다.




그래도 여자아이들 고사장 분위기는

미니스커트에 요란스러운 옷입은 아이들 빼면 양호했는데

남자아이들 고사장 분위기는

시험시작 5분후면 학생의 90%가 엎드려잤다고.

심지어 듣기평가가 끝나기 전부터 마음대로 다 찍고 뻗어버리더라나.




교내에서 흡연하지 말라고 방송해도

복도 곳곳에서 흡사 봉화를 연상케할만큼 연기가 줄을 이었단다.

(시험시간이 끝날때까지 문제지를 보고있는 사람이

우리학교 애들밖에 없어서

답안지 보여달라는 협박도 받았다고.)




도시락 까먹을 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던가.

오후 첫시간인 <수리2>때 문제가 발생했다.

오전부터 살살 아프던 배가 갑자기 발작을 시작했고

온몸에 식은 땀이 나고 다리가 덜덜 떨렸다.




소리가 날정도로 떨리는 다리를 붙들고

계속 문제를 풀고 있다가

시험종료 5분전에

난생처음 답안지를 밀려썼다는 걸 알았다.




답안지를 새로 받기는 했지만 시간은 모자라고

결국 문제를 다 풀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내가 밀려써서 틀린 문제 갯수와

내가 못푼 문제들 중에 

틀릴 가능성이 60%이상인 문제 갯수가 같았다는 것.




드디어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가보니 이미 30명쯤 줄을 섰다.

10분동안 줄만 서다 돌아올 것 같았다.

포기하고 그냥 <외국어영역> 시험을 치렀다.

후다닥... 무려 25분이 남았고 

시험관에게 다시 교실에 들어오지 않을테니 화장실에 보내달라 했다.




5분도 넘게 화장실에 있다가 나왔다.

시험관이 창밖을 보며 물었다.

괜찮냐고.

시험을 말하는지 몸상태를 말하는지...

그저 모르겠다고 했다. 




방송에서는 쉽다고 했던가.

하지만 친구들은 어려웠다고 했다.

제일 잘 본 모의고사때보다는 거의 20점이 떨어졌던가.

심지어 2학년말에 선배들 시험지로 본것보다도 낮은 점수였다.

수리2가 원흉이었지만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후다닥 찍은 외국어영역은 만점이었다. 역시 찍기도사 ^^;)




나중에 점수가 배달되었을 때는

답안지를 밀려써서 12,13점 떨어진 친구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은 학교를 낮췄고

끝내 한명은 제수, 삼수를 거쳐 의대에 갔다.(지금 인턴이다.)

나는... 학과를 낮췄다.

3학년초에 목표했던 치의예는 

여름이후 본고사 성적이 떨어져서 포기했었지만

안정권이라고 생각했던 도시공학과를 포기해야할땐 눈물이 났다.




사실 어려서부터 큰 시험을 앞두면 배앓이를 했다.

심지어 운전면허도 국가고시라고

필기시험날과 실기시험날 아침에 화장실에 들락거렸다.

'아구탕'이 아니어도 배탈은 났을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안먹던 음식은 조심해야할듯.




아참, BlueLine님께 당부말씀.

시험날 아침에 괜히 안먹던 음식 먹지 마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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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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