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3 多

짐만 싸는 여자 2008. 1. 10. 08:45

며칠 전에야 깨달았다.

이번 여행,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거.

온식구를 데리고 자유여행을 한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었다.

아직 시작도 안했건만

회의부터 든다.

 

오늘 저녁, 큰언니네 둘째를 봐주러 갔다가

부모님 주무실 방을 닦고 설겆이를 하고

잠시 짬이 나서 큰언니와 이야기를 해보니,

언니는 며칠 전까지

방콕이 대도시인지도 몰랐고,

시골 어드매 바닷가에 붙어있는 리조트에 가는 줄 알았댄다.

 

내가 숙소에 대해 리조트급으로 할까 교통좋은 콘도형으로 할까 물었을 때에도

전혀 개념이 없었다 한다.

있지도 않은 바다를 염두에 두고 리조트 아니어도 되지, 생각했던 걸까.

주방딸린 아파트면 되지 생각했던 나는,

조식도 안딸린 숙소를 예약한 것부터 후회하게 생겼다.

 

언니는 요며칠 이러저러한 여행리뷰들을 살펴봤는 모양.

최근에 "수영장 별로면 돌아나 다니자" 했던 이유가 그것인가 보다.

그리고 오늘은 결정적으로,

패키지나 갈 걸 그랬다고 한다.

 

언니들이 패키지 못간다고 버텼지 않았냐 물으니

자기는 괌에 간다면 패키지가 필요없단 뜻이었다고 한다.

내가 듣기로는 분명,

"2살배기 데리고 패키지는 못해요, 너무 빡세요"였는데

본인은 그게 관광위주가 아닌 휴양지에 가자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말하셨지,

관광을 즐겨라.

당신에게 여행은 정말로 '관'광일진데

아직 보는 것에 배고프신 분을

들입다 쉬다보면 쉬는 것도 좋다고 막무가내로 끌고가잔 말인가.

 

급기야 아버지 의견을 묻지 말지 그랬다 한다.

가족의 우두머리가 제한한 첫 가족여행의 행선지를

다수결로 휘리릭 정하자고?

 

언니의 결론은,

니가 고생했지만

나는 더 힘들다,

여행은 안 가는 게 맞다, 

란다.

 

초등학생 방학이라 애한테 신경쓰면서 2살배기 키우고 과외까지 해야하니

힘들었던 건 나도 안다.

그래도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내가 수없이 문자 보내고 전화할 때 자기가 항상 바빠서 흘려들었다는 것으로

이번 여행의 어정쩡함이 모두 내 책임인가,

 

의사소통의 부재를 말하는데,

여행 직전에 와서야 관심을 보이려거든

아에 안 보이는 게 나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도 나가서 가장 힘이 되어줄 사람이니

내가 참아야겠지만

언니랑 조카랑 셋이 갔던 홍콩여행 막판에 얼굴 붉힌 일마저 떠오른다.

그때도,

"니가 고생한 건 아는데 나도 힘들고 짜증난다." 였던가.

 

'가격대비 만족도를 높이면서 불편하지 않게'

라는 불가능한 모토로

관광과 쉼을 이리저리 짬뽕하느라 짬뽕나기만 했던 나의 한달은

이렇게 절단나는 것이다.

사서 고생이란 게 이런 거다.

허허,

그동안 아무 관심없이, 이견도 없이 내 여행플랜을 따라준 김군이 고마워진다.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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