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친 다리 때문에 항생제를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부터 약이 바뀌었거든요. 너무 간지럽다고 하니 약을 하나 추가해주는데 약사가 "조금 졸리실 거에요" 하는 거에요. "평소에도 졸린데요"하며 대수롭지않게 받아왔으나...
어제 하루종일 잠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오전에는 해롱해롱 "아우~ 일을 못하겠네"... 점심먹고는 그 바쁜 시간에 아에 40분간 누워 자고... 간식겸 저녁먹고 자리에 잠시 엎드렸다가 스읍~ 침흘리며 일어나고... 화장실 갔다가 휘청~ 넘어질 뻔 했으며(주변 동료에게 이러다 죽겠다고 하소연했어요)... 집에 가는 길에는 추석선물 무게를 못이겨 이리저리 비틀~... 결국 집에 와서는 8시반부터 10시간을 때려 자버렸습니다.
약효가 끝내주네요. 정말.
원래 잠에는 일가견이 있는 편입니다.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9시뉴스 직전에 그런 광고만 나오면 '착한 척하느라' 잠자리에 누웠구요. 그 습관이 오래 지속되는 바람에 고등학교때도 '12시취침 6시기상'에 적응 못해서 자습시간마다 사감선생님께 두들겨맞았습니다.
일단 누우면 3분 안에 잠들어서 고등학교때 기숙사 친구들이 '3분 소정'이라 부르기도 했죠. 같이 이야기로 해놓고 혼자 자버린다고 원성이 자자했어요.
지금도 하루 8~9시간 수면을 고수하는지라 간혹 5~6시간 자고나면 '오늘은 어제 밀린 잠을 보충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려요. 그래서 평소 회사에서 조는 일은 드문 편이죠. 밤에 그렇게 퍼질러 자니까.
수습때는 술먹다가 자는 일도 간혹 있었어요. 선배들 앞에서도 딱 한번 소주잔 든채로 꾸벅꾸벅 졸았죠. 그때만 해도 하루 1~2시간밖에 못자고 경찰서를 빙빙 돌던 시기였거든요. 당시 시경 캡이던 이모선배는 지금도 가끔 "너 요즘은 술먹다 안 조냐?"고 물으시네요. 당시 친구를 만나서도 10시만 되면 엎드려 자서 "선배들이랑은 잘도 마신다며" 구박도 받았어요.
하지만 잠의 지존은 저희오빠입니다. '등만 붙이면 잔다'고 해서 이름 한 글자를 '잠'으로 대체해 부른 적도 있지요. 항상 지각을 밥먹듯 하는 이유도 잠이었으며 어려서 납치소동과 실종소동 겪은 이유도 잠이었습니다.
납치소동은 아침에 집앞 리어카에 누워 세상모르고 자다가 저녁에 리어카 주인따라 집에 돌아온 일입니다. 오빠가 서너살때였다고 하니 저는 기억도 못할 일이죠.
실종소동은 아버지께 야단맞고 방에 세워둔 커다란 상 뒤에서 벽에 기댄채로 잠들어버려서 집나간 줄 알고 온 가족이 동네를 뒤집고 다녔던 일입니다. 당시 야단맞은 이유는 "과자먹었으니 밥을 굶겠다" 했다가 맞았던 일이죠.
야단은 함께 맞았는데 저는 울면서 밥먹고 오빠는 뛰쳐나갔어요. 나름대로 반항에 눈뜬 시기라고 오해한 우리는 쿨~한 밤거리를 헤매야만 했죠. '오빠를 못찾으면 어떻게 하지?' 당시의 불안한 마음과 함께 ㅎ맨션 위에 걸려있었던 달무리진 둥근 달이 생생합니다.
이제 다시 평소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결단을 해야겠어요. 잠을 유발하는 약덩어리를 찾아내 과감히 처단하려고 합니다. 아깝지만, 저도 살아야지요. 생존을 위해 잠을 참아야만 했던 순간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요. 어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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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쏘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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