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었습니다. 고등학교때는 <상실의 시대>로 읽었으니 '다시'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은 아닐듯도 합니다. 처음 그책을 읽을 당시의 저는, 지금보다 10살이 어렸고 지금보다 2배쯤은 순진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2년전쯤 회사 동기들이 이 책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상당히 낯설더군요. 그녀들은 나오코와 미도리를 이야기하는데 저는 와타나베마저 기억이 안나더군요. 제 머리속에 떠오르던 것은 오직 '마스터베이션' 하나였습니다.
마스터베이션. <상실의 시대>로 인해 처음 사전을 찾아보고 알게되었던 단어였으며, 남자들의 수상한 밤에 대해 불신과 저항을 품게 만들었던 단어였지요. (거봐요, 순진했지.)
여튼 2년전의 그 대화는 제게 쓸데없는 반감을 주었습니다. 오냐, 똑같이 너를 읽었는데 나만 너를 모르는구나, 고우얀것... 하며 괜한 책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잊혀진 부분을 파해치지 않겠노라고 다짐해버렸습니다.
작년인지 <해변의 카프카>가 발간되고 주변 하루끼마니아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읽었느냐, 나도 읽었다. 너는 좋았느냐, 나도 좋았다. 그 대화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저는 남몰래 ㅁ365 사이트를 방문, 다른 책들에 끼워 도톰한 2권을 받아보았습니다. 그러나 한번 사둔 책엔 이상하게도 필이 꽂히지 않는 고로 몇달을 꽂아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 생일이 다가왔고 가까운 친구가 <해변...>를 선물로 사두었다고 전해왔습니다. 그제서야 '아 그거 나도 있는데...'하며 사놓고 안읽은 것이 쪽팔리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핑계거리로 생각한 것이 <노르웨이의 숲>부터 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두통약을 먹고 네시간이나 자버린 뒤에 계속 자면 연속수면시간 기록을 깰것 같아 책의 마지막부분을 읽었습니다. 문득, 오랫동안 묵혀두었다가 빌려본 영화 <청춘>과 이미지가 겹치더군요. 젊음, 방황, 자살, 섹스... 그리고 마지막 부분. '그녀'에게 안정을 찾기로한 '그'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서있는 공중전화.
10년전의 제게는 단어 하나 빼곤 다가오지 않던 소설이, 이제는 조금 의미를 갖는 듯도 합니다. 도쿄와 교토, 아오모리... 다녀온 적이 있는 곳들이라 그런지 거리이름 하나하나에 괜한 흥분도 하고, 다시 대학시절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 심지어 입학하고 어리둥절 셔틀버스 차고 근처의 창고같은데서 <국어작문> 등등의 책을 받아가던 기억까지도 떠올렸으니 기억을 후벼내는 능력이 대단한 책이랄까요?
하동 촌구석 고등학교 아이들이 서울아이들마냥 낯빛이 허연 것이며, 사투리는 어른전용인 것이며... 보자보자하면 맘에 걸리는 부분 투성인 <청춘>이란 영화도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인가 싶어지더군요.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집합체를 요리조리 휘집어 놓는 것, 소설이나 영화의 가장 큰 힘 중 '하나'니까요. 그런의미에서 사진은 'はな'.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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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