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쯤 되었을까. 회사 자료실에서 <슬픈 인도>라는 책을 주워왔다. (주워왔다는 표현은 정확하다. 대여하던 책을 등록번호를 떼고 방출할 때 건진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 책상에 꽂아두고 자리만 두어번을 옮겼다. 그래도 손이 가질 않았다. 그만큼 인도는 내게 먼 곳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좋아한다면서 인도를 내팽개치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딴지를 건다해도 할말이 없다. 티벳이건 네팔이건 히말라야건, 남들이 제아무리 감동받고 온 곳이라 해도, 힘든 곳은 가기 싫었다. "오지는 싫다"가 내 진심이었다.

며칠전 우연히 이책을 집어들었을 때도 읽으려는 생각도 아니었다. 그저 집에나 가져다두려 했다. 그러다 이튿날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나도모르게 조금씩 인도에 정을 붙이기 시작했다.

모래사장을 걷는 화려한 전통옷의 여인. 그 뒤로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와 여럿이 타고있는 배한척 뒤로 푸른 수평선이 머무는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아래켠에 '바람'이란 제목과 함께 이렇게 쓰여있다.

"어디론가 가고 있을 때가 행복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보다, 그곳을 향해 가고 있을 때가 더욱 가슴 설레었으며, 어디로 가는지조차 잊었을 때, 가장 행복했다. 그러나, 바람처럼 떠도는 삶은 늘 고단했다. 기쁜 만큼 또한 힘들었으니, 세상은 냉혹할만큼 공정했다"

그래, 나도 여행이란 것을 할 때, 이것저것 자료를 찾거나 비행기좌석 안전벨트 묶으며 이런저런 상상을 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몇번이고 떠나보아도 낯선 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언제나, 즐거움보다 고통이다. 그럼에도 자꾸 나는 떠나려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중독이라 표현하듯, 나도 그러하다. 나의 고통은 중독의 대가인지 모른다.

그는 언젠가부터 '아는만큼 보인다'는 여행자들의 강박을 털어냈나보다. 첫 여행지로 대만에 갔을 때 가이드북도 경험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우연을 틈타 만났던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그 감동을 잊은 채 가이드북과 정보에 의존해 안전하게 그리고 욕심부리며 여행하던 수많은 나날들. 다섯번째 인도여행에서야 비로소 카메라와 가이드북을 버린채 지도한장 들고 만난 세상... 자신과 자연을 구분하지 않고 점점 가진 것들을 벗어던질 수 있게 만든 경험이 우르르 흘러내린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일종의 강박이 되어 아는 것만 보고, 보이는 것만 느끼게 한다. 책에 나온 곳을 제대로 찾아가지 못했을 때 실망하고 또 상처받고... 육체적 피로에 정신적 피로를 더하고 또 더한다.

그럼에도 아직 나는 떠나기전에 인터넷과 가이드북을 던져버리지 못한다. 채운 것도 없이 버리는 것은 버림이 자체가 하나의 목표가 되어 불행하다고 그가 경고하듯, 어쩌면 아직은 채움이 모자란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인도가 슬픈지 안슬픈지 모른다. 아직 다 읽지도 못했고 가보지도 못했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이순간 나는 인도와, 아니 몇번이고 인도를 다녀온 사람의 기억과 공명하고 있다. 너무 공명하다 못해 우산을 놓고 내렸으니 책값은 톡톡히 지불한 셈이다.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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