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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였어?"그녀가 물었다.

환한 뉴욕의 대낮

"천만이나 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떻게 날 선택한 거지?"

"난 당신처럼 마음이 텅 비고 외로웠어,

다른 가능성은 없었던 거야"

그건 내 솔직한 대답이었고

그녀는 안심한 듯 어느새 잠이 들었다.


미하엘 크귀거 글/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달빛을 쫓는 사람(Wer das Mondlicht Fangt) pp. 32 - 33



유리창을 반쯤 가린 버티컬 밑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창밖으로는 높은 빌딩숲...
주름진 침대시트 위엔 눈을 감고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
그 얼굴을 반쯤 가린 남자의 뒷통수와 상체...

부흐홀츠의 이 그림에 미하엘 크뤼거가 붙인 이야기는
나의 어린 상상과 일치한다.

몇년전 '미스터플라워'라는 싱거운 영화에서
조그많고 예쁜 꼭대기 방을 보았을 때,
그리고 '공각기동대'에서 창문밖 건조한 풍경을 보았을 때,
그때마다 난 고층건물의 몇십층쯤에나 있어줬으면 하는
통유리창을 가진 방을 상상해왔다.

왠지 우리나라라고 생각하면 안되겠기에
머나먼 어느곳으로의 이민을 고민하기도 했다.

우연히 건진 이책 덕분에
나는 오늘도 꿈꾸던 방에서
영화속 주인공같은 대화를 나누는 나를 상상한다.

"왜 나였어?"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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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3월에 써놓았던 글입니다. Ex Libris(서재 결혼시키기)는 그해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구요.


1. 나는 책을 좋아했다?

우리엄마는 누군가 나에 대해 물으면 "어릴 적부터 책을 붙잡고 잠이 들었다" "안 시켜도 혼자 공부했다"라고 말해왔다.

솔직히 내가 책을 붙들고 잠이 들기는 했다. 당시 무거운 솜이불 이글루 속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던 외풍이 심한 방에 상주했는데, 누워서 책 한쪽을 잡고 읽다보면 두어 페이지면 잠이 솔솔 왔다.

그리고 내가 주로 읽던 책은 그림 동화, 괴도 루팡 등등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읽고 또 읽고 예닐곱번을 반복했던 것이었다. 세로로 쓰여진 외국 고전은 한 페이지도 읽기 전에 잠이 드니까 손도 안 댔다. (엄마도 이 사실을 알까?)


2. 그래서 나는 글재주가 있다?

울언니들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니가 글재주는 있잖니... 음악도 좀 하고... 미술은 못하지만"

언니들과 오빠가 미술에 일가견이 있었다. 학교 대표쯤은 했으니. 나도 반대표 3명쯤엔 들었지만 그건 그림 축에도 못 낀다고 단체로 무시하곤 한다. 그대신 백일장 참가경력은 글재주라고 말해준다. 

(감지덕지하면서도 언제 들통날까 걱정되는 일이었다. 어쩌다 기자가 되어버려 빼도박도 못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3. 우리집에는 책이 있다?

우리 집에도 세계 명작류와 위인전류의 전집들이 가득한 책장이 두어 개는 있었다. 책장유리는 두꺼웠으며 비싸다는 것이 늘 강조되어 조심해야 할 대상 1호쯤 되었다. 한번은 작은언니가 데려온 친구가 '그 비싼' 유리를 깨먹어서 '친구금지령'이 내리기도 했다. 

어쨌건 책은 있었다. 허나 전집류는 꺼내서 읽기위한 것이 아니라 멀리서 팔짱끼고 지켜보기 위한 장식품. 전집류 외에 책장근처에 얼쩡댔던 것은 무슨 영어테이프 전집류 정도였으며 단행본 업데이트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 책살 돈, 얼마면 되겠나?

밥상머리에서 며칠에 돌아오는 어음이 걱정이라는 말에 밥알이 안 넘어가는 자식들로서는 '책 살 돈은 달라고 해라', '친구들에게는 항상 너희가 베푸는거다'라는 말을 아무리 들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3년이 지나 오빠가 쓰던 전과를 쓸 수 없다는 사실에 울고 점심시간에 매점 한 번 못가면서 '책을 왜 사냐, 과자는 얻어먹자'를 가슴에 새겼다.

(당시의 친구들이 혹시 이 글을 본다면 양손으로 허겁지겁 과자를 먹던 당시의 나를 용서해 달라. 두번 다시 그러지 않겠다. 나더러 매점갔다오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한손은 묶어둘 것을 맹세한다)

그래도 그 덕에 절약하는 습관만은 몸에 배어서 '알뜰' 하나는 자신있는 네 남매가 탄생했다. 신용불량 4천만시대가 온다해도 카드깡, 돌려막기 등의 '유닛'은 절대 사용하지 않으리라 굳게 믿어도 좋다.

(다만 꼭 사야할 것도 고민하다 품절된다던지, 공금을 아끼느라 혼자 고생한다던지, 싸다는 말에 현혹되어 쓸데없는 것을 충동구매한다던지, 항상 저도모르게 회계를 하고있다던지 하는 부작용이 자주 나타난다)


5. Ex Libris 속의 가족은?

외식하러 가서도 교열병에 걸린 것처럼 메뉴판의 오자잡기에 여념이 없는 책벌레 가족이다.

딸은 자라서 남편과 함께 침대에서 같은 책을 소리내어 읽는 일로 대화를 대신하고, 결혼 5년후에 서로의 서재를 '결혼시키'면서 예전에 써놓은 낙서들을 보며 즐거워하고, 책들이 집을 점점 잠식해가는 데도 여전히 헌책방에서 100년된 헌사를 찾기를 즐기며 (나는 이부분에서 필자를 부산출신 최모기자와 동일시하곤 했다) 역시 그들의 자식들도 책과 함께 자라는... 우리 가족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6. 무엇이 우리를 다르게 만들었을까?

Ex Libris의 필자는 글쟁이 부모와 글쟁이라는 직업과 글쟁이 남편을 가졌다. (그리고 외국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아버지는 장사를 하시고, 주로 보시는 책은 신문과 시사잡지를 제외하면 월간 바둑 뿐일게다. 어머니가 주로 보시는 책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성경과 거기서 파생한 기독서적이다.


7. 가족은 이랬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

어쩌면 아주 소박한... 책과 가족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나는 필자와 그 가족이 부러웠다. 자식들에게 책읽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삶, 그리고 그 삶이 습관처럼 대물림되는 것...

지금까지는 달랐지만 앞으로의 내 가족의 모습은 그들과 닮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기 위한 네가지 결심...

* 책을 사랑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 그리하여 그 습관을 자식들에게 물려줘야겠다
* 그러려면 책을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야겠다
* 그렇다면 지지않도록 책을 열심히 사 모아야겠다

특히 네번째의 경우는 세번째가 성공할 경우에 대한 대비로서 나중에 서재를 결혼시킬 때 내 책들의 부피가 너무 빈약하여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밀리는 쪽팔리면서도 자존심상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다.



8. 고맙다, Ex Libris야~

처음엔 박식함과 위트있는 글솜씨에 질투를, 마지막엔 가슴에 불어오는 책바람을 느꼈다. 한번에 책한권을 끝까지 못 읽는 끈기없음 때문만 아니라 한꺼번에 다 읽기가 아까워서 책장을 덮었다 열었다를 반복하게 만들기도 했다. 

비록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것이기는하나 지금 활활 타오르고 있는 책사랑은 전적으로 Ex Libris에게 빚졌다. 저자 앤 패디먼씨가 이책을 써주어서 무척 고맙다. (내인생 최초로 저자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봤다)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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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SQ (1/113)s iso70 F3.7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었습니다. 고등학교때는 <상실의 시대>로 읽었으니 '다시'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은 아닐듯도 합니다. 처음 그책을 읽을 당시의 저는, 지금보다 10살이 어렸고 지금보다 2배쯤은 순진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2년전쯤 회사 동기들이 이 책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상당히 낯설더군요. 그녀들은 나오코와 미도리를 이야기하는데 저는 와타나베마저 기억이 안나더군요. 제 머리속에 떠오르던 것은 오직 '마스터베이션' 하나였습니다. 

마스터베이션. <상실의 시대>로 인해 처음 사전을 찾아보고 알게되었던 단어였으며, 남자들의 수상한 밤에 대해 불신과 저항을 품게 만들었던 단어였지요. (거봐요, 순진했지.)

여튼 2년전의 그 대화는 제게 쓸데없는 반감을 주었습니다. 오냐, 똑같이 너를 읽었는데 나만 너를 모르는구나, 고우얀것... 하며 괜한 책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잊혀진 부분을 파해치지 않겠노라고 다짐해버렸습니다.
 
작년인지 <해변의 카프카>가 발간되고 주변 하루끼마니아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읽었느냐, 나도 읽었다. 너는 좋았느냐, 나도 좋았다. 그 대화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저는 남몰래 ㅁ365 사이트를 방문, 다른 책들에 끼워 도톰한 2권을 받아보았습니다. 그러나 한번 사둔 책엔 이상하게도 필이 꽂히지 않는 고로 몇달을 꽂아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 생일이 다가왔고 가까운 친구가 <해변...>를 선물로 사두었다고 전해왔습니다. 그제서야 '아 그거 나도 있는데...'하며 사놓고 안읽은 것이 쪽팔리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핑계거리로 생각한 것이 <노르웨이의 숲>부터 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두통약을 먹고 네시간이나 자버린 뒤에 계속 자면 연속수면시간 기록을 깰것 같아 책의 마지막부분을 읽었습니다. 문득, 오랫동안 묵혀두었다가 빌려본 영화 <청춘>과 이미지가 겹치더군요. 젊음, 방황, 자살, 섹스... 그리고 마지막 부분. '그녀'에게 안정을 찾기로한 '그'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서있는 공중전화.

10년전의 제게는 단어 하나 빼곤 다가오지 않던 소설이, 이제는 조금 의미를 갖는 듯도 합니다. 도쿄와 교토, 아오모리... 다녀온 적이 있는 곳들이라 그런지 거리이름 하나하나에 괜한 흥분도 하고, 다시 대학시절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 심지어 입학하고 어리둥절 셔틀버스 차고 근처의 창고같은데서 <국어작문> 등등의 책을 받아가던 기억까지도 떠올렸으니 기억을 후벼내는 능력이 대단한 책이랄까요?

하동 촌구석 고등학교 아이들이 서울아이들마냥 낯빛이 허연 것이며, 사투리는 어른전용인 것이며... 보자보자하면 맘에 걸리는 부분 투성인 <청춘>이란 영화도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인가 싶어지더군요.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집합체를 요리조리 휘집어 놓는 것, 소설이나 영화의 가장 큰 힘 중 '하나'니까요. 그런의미에서 사진은 'はな'. ㅋㅋ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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