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대자보 전문기자?
결혼'방'을 써붙이는 풍습이 있다.
동기들이 하나씩 둘씩 결혼에 골인하면서
방을 만드는 게 몇번째인지, 누가 남았는지 가물가물.
남의 연애사를 쫙 꿰고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 동기들 중에 최다 필자가 되고 말았다.
구모기자, 송모기자 결혼방에 이어 세번째.
지난봄 송모기자 결혼 때는
전라도 사투리와 판소리 형식을 빌어
'참신한 시도'라는 호평(?)을 들었는데
이번엔 시간이 없어서 당사자 동의 하에
예전에 써놓은 글을 참조했다.
주말에 결혼하는 동기는
내 블로그에 꽤 자주 등장했던 최모기자.
(우리는 서로 '내연녀'라 부르며 밀월을 즐기곤 했다.)
다른 때와 달리 유머와 성적 코드를 빼고 진지하게 쓴데다
그녀의 출중한 문장이 30%가량 녹아들어
꽤 낭만적이 된듯 하다.
그와 함께라면 북극도 춥지않다
입사 초 그녀는 말했다.
“난 35살에 결혼할거야. 얼음 조각이 놓여있는 호텔에서 결혼하려면 그때는 돼야할 걸.”
4년 뒤 그녀는 말했다.
“여행에 큰돈 쓸 수 있는 기회는 결혼 밖에 없어. 얼음조각? 얼음조각? 어...”
최멍(본명 최명애, 경향신문사 재직중. 이하 최멍)과 남동(본명 남종영, 한겨레신문사 재직중. 이하 남동)은 1999년 말 언론사 스터디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겨울이 뉘엿뉘엿 넘어가던 2000년 초, 언론사 합격이라는 그들의 공동목표는 변질되기 시작했다.
신문 스크랩을 복사해서 나눠주면서 눈이 마주치던 봄, 최멍은 남동에게 난해한 이메일을 보냈다. “이 시가 뭔지 맞춰볼래요?” 그러자 남동이 재깍 정답을 보내왔다. “서점에 가서 우연히 잘 모르는 시집을 펴들었는데, 하필 그 페이지가 펴졌어요.”
상식책을 보며 그해 처음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해 달달 외다가 눈이 마주치던 봄, 단둘이 만난 세 번째 자리에서 남동은 말했다. “전주, 같이 갈래요?” 한 달 뒤 전주영화제가 아주 좋았더라고, 학원 동료에게 이야기를 들은 최멍은 또 이메일을 보냈다. '지금 전주에는 유채꽃이 어른 어깨 높이만큼 자라서 물결을 이룬답니다.'
5년이 흘렀다. 그들은 아직 전주 영화제에 가지 못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핀란드 와 스웨덴과 아이슬란드를 함께 다녀왔다. 어려서부터 누나의 지리부도를 달달 외며 북국 여행을 꿈꾸던 남동과 피어리, 난센, 아문센, 스콧의 위인전을 읽고 꿈에서 바이킹을 만나던 최멍. 그들은 해마다 arctic circle(북극권. 북위 66 °33')에 걸쳐진 나라들을 차례차례 정복중이다.
올해의 목표는 캐나다 처칠. 북극권 바로 아래 있는 이 작은 마을은 해마다 10월말에서 11월 중순까지 하얀 북극곰들이 언 바다를 건너가는 곳이다. 길이 끊겨 기차밖에 다니지 않는 그곳에 가는 길은 너무도 멀고 너무도 비싸기에, 그들은 ‘비장의 카드’ 결혼을 떠올렸다. 결혼날짜는 북극곰 나들이 일정에 맞추고, 혼수로는 고어텍스 점퍼와 냉장고보다 비싼 카메라를 샀다. ‘결혼식 날 드레스가 맞을까’ 보다 ‘이번엔 아이슬란드에서 놓친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그들이었다.
최명애?남종영 결혼식
- 10월 22일(토) 오후 1시 / 부산 국제신문사 대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