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땅 위에 나는 랜드로버 위에.

그는 나를 구경하고 나는 그를 구경한다.

그는 `동물의 왕' 사자.

내가 그와 같은 공간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는 내게 달려들어 내 통통한 허벅지를 물어뜯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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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동쪽의 크루거 국립공원이다. 남한 전체면적의 5분의 1에 달하는 국립공원 곳곳에는 울타리가 쳐진 사설보호구역(게임 리저브)이 자리잡고 있다. `게임 드라이브'는 하루에 두번, 오전 6시와 오후 4시에 벌어지는 사파리. 동물들은 털털털 기름냄새를 풍기며 달리는 랜드로버를 그저 `움직이는 돌덩이' 쯤으로 생각하지만 누군가 차에서 `독립'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관광객들은 롯지에 투숙하는 순간 `본 롯지는 게임 드라이브 과정에서 생기는 사고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서류에 서명을 해야만 랜드로버에 오를 수 한다.


 전날 밤엔 그를 멀리서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눈이 밝은 원주민 트렉커(동물의 흔적으로 길안내)가 차바퀴 자국 근처로 조그맣게 나 있는 삼각형 모양의 발자국 하나를 발견했다. 근처를 10여분 헤매고서야 수풀 뒤로 빼꼼 옆얼굴을 드러낸 그를 볼 수 있었지만 해가 거의 져버린 상황. 레인저(운전과 가이드 역할)는 `왕과의 접견'을 새벽으로 미루자고 했다.

 조금 달리자마자 트렉커는 코끼리들의 흔적이 있다고 했다. 코뿔소, 임팔라, 인얄라, 기린을 지나 물가로 이동했다.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코끼리 몇마리가 나타났다. 하나, 둘, 셋, 넷… 끝도 없이 몰려오더니 무려 서른마리가 넘는 대부대를 이뤘다.
"저 덩치가 가장 큰 녀석이 쉬발라에요. 대장이죠. 쉬발라 외에 두명의 수컷들이 각자 무리를 이끌고 있어서 모두 함께 있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에요. 글쎄, 한달에 한번이나 가능할까."
 이때 무리 옆으로 다가온 버팔로 한마리. 덩치가 제법 되는 코끼리들 두어마리가 나무를 흔들며 위협하자 버팔로는 결국 물맛도 못 보고 발길을 돌린다. 배를 채운 코끼리들이 랜드로버 뒷쪽으로 다가오자 맨 뒷자리 백인여성이 기겁하며 떠나자고 한다.

 

 한참 달려 조용한 벌판에 이르자 레인저와 트렉커는 테이블을 펴고 `자연 속 바(bar)'를 열었다. 맥주, 와인 등 각자 원하는 음료를 들고 쏟아질듯 반짝이는 별을 보며 나누는 이야기.
 두 명의 동양인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건냈던 두 백인 커플은 크루거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의 도시에 살고 있다 했다. 그중 한 부부가 보호구역 운영에 참여하고 있어서 자주 이곳을 찾는다며 이탈리아 관광객이 가장 이기적이라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인저가 이탈리아 단체 관광객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가 모는 랜드로바에 탄 6명이 표범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다음날은 자신의 차에 9명이 올랐지만 허탕. 그러자 다음날엔 자신의 차엔 3명뿐. 우리나라 단체 관광객이라도 딱 저랬겠다며 김군이랑 둘이 웃었다.

 

 레인저는 단순히 사파리 가이드만 하는 게 아니라 리조트 전반의 코스를 함께 했다. 리조트로 돌아와 함께 식사한 후 모닥불 곁에서 들은 그의 나이는 스물여덟. 팔에 30cm에 가까운 흉터가 있었는데 독사에게 물려 엄청나게 부어오르자 스스로 칼집을 내서 독을 뺀 흔적이라 했다.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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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파이브 중 하나인 코뿔소(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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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커의 부업은 정원사(?!). 랜드로버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손수 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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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났던 코끼리떼. 오른쪽 무리중 몸집이 크고 긴 상아를 가진 놈이 쉬발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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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은 눈에 밟히도록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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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자는 제얼굴이 잘린걸 아는지 표정이 심상치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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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은 역시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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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가는 봉고차가 버팔로를 발견하고 멈췄다. 무서워서 김군이 찍었다.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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