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 8층이다. 마라네 B&B. 
자, 열쇠를 꽂고 들어가서 쉬면 되는 거야...아아아아아?
열쇠가 계속 돌아가네?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열쇠는 1080도를 돌고도 문을 열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짐꾼이 돌려보아도 마찬가지.
커다란 여행가방에 장까지 봐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찾아보기로 했다.
짐꾼은 무겁다고 카메라고 가방이고 다 놓고 나가겠다 한다.
"잃어버리면 어떡해!!"

한바탕 신경전을 벌이다 책가방을 매고 나왔다.
날씨는 찌고 다리는 무겁다.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공중전화 발견.
또 돈을 먹을까봐 두렵다.
20유로센트를 넣는데 아차. 또 먹혔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공중전화가 다 돈을 먹잖아!!!"
전화카드 파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길건너 주유소, 주유소에서 팔지도 몰라.

"전화카드 파나요?"
주인 할아버지는 못 알아듣는 표정.
기름 넣으러온 남자가 대신 말한다. "없대요"
저 앞쪽 코너에서 우회전 하면 파는 곳이 있는데
오늘이 축제일이라 문을 닫았을 확률이 높다고 덧붙인다.
오우~ 남자. 잘생겼는데 어찌 영어도 잘하니...

그나저나 어쩌지, 어쩌지?
주유소 전화를 쓰겠다고 말해볼까?
기름 넣으러온 남자의 통역으로 오케이.
남자는 휴대폰에 걸면 1분에 0.5유로는 줘야한다고 말한다.

마라의 휴대폰에 건다.
"마라? 나 쏘뎅이야"
"누구?"
생각해보니 그녀는 나의 이름도 모른다.
"어제밤에 당신 집에서 잔 사람들인데..."

"프론트도어를 열수가 없어. 와주면 안되나요?"
"나 영어 잘 못해. 딴사람 바꿔줄게"
"아니 저..."

(다른 남자의 목소리)"뭔일이유?"
"열쇠가 빙빙 돌아가요. 프론트도어 못열어요."
"한번 더 해봐요."
"여러번 해봤어요. 우린 못해요. 누가 와줘야해요."
"나는 그 열쇠는 잘 몰라요. 그냥 다시 해봐요."
"안돼요. 못해요. 우리 지금 죽겠어요. 마라가 와야해요."
"(마라와 이야기하더니) 알았어요. 5분만 기다려요."

휴우~ 다행이다.
짧은 영어와 열악한 통신시설이 우리를 죽일 뻔했다.

이미 영어 잘하던 청년은 없다.
"얼마나 드릴까요?" 주인에게 물으니
어깨를 들썩이며 알아서 달라는듯.
대략 3분쯤 썼으니 1.5유로를 내밀었다. 매우 좋아한다.

다시 아파트 앞으로 가서 기다리는데 한숨이 절로 났다.
역시 호텔을 예약했어야 하는데...
짐꾼은 전화값으로 2000원이나 줬다고
통신사정 나쁘다고 궁시렁.
뭐라는 거야? 하나도 안아깝구만.
못들어가고 한밤중까지 기다렸다고 생각해봐.

10여분뒤, 마라가 왔다.
뚱뚱해서인지 땀을 뻘뻘 흘리는 마라.
한 100킬로 가까이 되시죠? 묻고 싶지만 참는 쏘뒝.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피렌체 잘 봤어?" 묻더니
"문여는거 베리 이지해"한다.
현관문 앞에 선 마라.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고
왼쪽으로 가볍게 45도쯤 돌리더니 문을 열어젖힌다.

이럴수가.
그녀는 마지못해 껄껄 웃고 우리는 어이없어 껄껄 웃고.
잠시후 우리는 교대로 열쇠따는 연습을 하고
마라는 우리가 장봐온 것을 보더니 물었다.
"냉장고 안에 물 먹었어?"
"아니"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고 "이 과일 너희거야, 이 물도..." 하고
천도복숭아랑 체리 등등이 가득 담긴 접시를 내민다.
조금점 우리가 사온 물은 Gasata(가스가 담긴 물/실수로 잘못 샀음).
그녀가 준 물은 Non Gasata.
타인의 취향대로 주다니, 고맙기도 하지.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방에 들어갔다.


18:00  빈둥빈둥 TV보다 씻기

19:00  한숨 때리기

21:00  "그냥 자자"
자다 깨서 해가 지려는 걸 보며 갈등.
지금 미켈란젤로 광장에 가면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데...
장관이라는데... 가야하는데...
하지만 기차역 앞까지 버스타고 또 갈아타야 하고,
돌아오는 버스는 사람도 많고 막힐텐데,
우리 컨디션으로 그걸 극복할 수 있을까?
... 그냥 자자

그래서 결국 하이라이트를 놓쳤다.
열쇠 해프닝만 없었더라도 불꽃놀이를 볼 수 있었을까?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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