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르던 글을 올립니다. 

지난 5월 11일 저는 우연히 내과를 발견했고 이튿날 위내시경 검사를 했으며 지금까지 치료중입니다. 

3일전 마지막으로 병원에 다녀왔으며, 앞으로 10일만 더 약을 먹으면 두달간의 '약'한 모습과 안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제가 갔던 병원에 있습니다. 병원 이름과 동네 이름은 이니셜처리했습니다. 그러나 글을 읽다보면 병원이름 앞자가 어떤 글자인지는 바로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글은 5월 11일부터 시작됩니다. 치료가 마무리되기 전에 이 내용을 공개했다가 혹시 저의 치료과정에 영향이 있을까하여 두려웠습니다. 이제 그럼 시작합니다.




ㅎ동은 '병동'이라고 이름을 바꿔도 될만큼 병원이 많습니다. ㅎ역과 ㅇ역 주변으로 미즈메디,황세영산부인과,유광사산부인과 등 여성들을 위한 유명병원들이 번쩍거리고, 건물당 한두개씩 개인병원과 한의원들이 옹기종기 둥기둥기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원래 기다리는 버스는 잘 안오고 찾던 물건은 가게에 없듯이, 무턱대고 아무 병이나 들고 찾아갈 '내과'는 눈에 띄질 않았습니다. 여러번 찾다가 포기하고 '소아과' 옆에 조그맣게 내과라고 써진 곳에 간적도 있습니다. 아이들 틈에 끼어서 순서를 기다리자니 여간 쪽팔리는 것이 아니었기에 참으로 난감했었습니다.

그러던중 위경련이 재발했습니다. 과음한 것도 아니고, 주말에 친구만나서 우아하게 점심먹고 영화보는데 아프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다 말겠지하며 다른 친구의 바람대로 피자를 시켜먹은 것이 화근이 되어 저는 그날밤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앓고야 말았습니다.

다음날 일단 기운을 차린 뒤, 저는 달라졌습니다. 한끼라도 굶으면 그자리에서 죽는거라고 주장해왔던 제가 '두끼 물만먹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꼭꼭씹어 밥먹기'를 실천한 것입니다. 평소 밀보다 벼와 친한 저라면 이대로 꼭꼭 씹는 것만으로도 건강을 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ㅎ역 근처에서 '내과'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딴맘이 생겼습니다. 면발이 끊어지지 않는 냉면이 입안에서 식도 안쪽까지 이어져있는 듯한 느낌이라는, 단물쓴물신물 다 토해내고 내장까지 드러내고 싶어진다는, 그... 내시경을 한번 해보고 싶어진 것입니다. 물론 전에도 의사들이 권한 적은 있습니다만 그때마다 의사를 도둑놈보듯 무시해왔는데 갑자기 고통을 감내하는 스스로를 떠올리며 미리 대견해해버린 것입니다.

일단 여기까지는 잡설, 본론은 여기부터입니다.




버스정류장 근처 건물의 2층에 있는 'ㅂ내과'. 반가운 마음에 냉큼 뛰어들어가서 의료보험증을 내밀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의사가 마이크로 제이름을 부릅니다. 들어가서 앉으니 차트를 보고 묻습니다. "경향신문에서 무슨 일을 하시나요?" 

의미심장한 질문에 이어 의미를 위장한 대화가 이어집니다.
"기잡니다"
"무슨 부서지요?"
"편집부인데요"
"저도 신문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입니다"

순간 짱똘을 굴려봅니다.
신문에 고정적으로 기고하나, 혹시 신문사 다니다 의대로 전향했나, 아님 신문사랑 싸웠나...

그러다 이름표를 보고 아차 합니다.
"ㅈ일보의...일가이신가요?"
당황한 나머지 '일가'라는 집합명사를 써버린 내게 의사가 대답합니다.

"네, 제 형이 사장이죠. 미국가있는 제 딸도 기자를 하겠다더니 요즘은 진로를 바꾸겠다고 해요. 지금은 종손이 수습 중이고..."


이후 저는 '왜 수면내시경 대신 일반 내시경을 해야하는가'와 함께 미국에서 심장관련 기술을 처음 들여온 ㅂ전문의가 서울대 교수자리를 기다리다가 결국 개인병원을 개업하게 된 경위 등을 들은 뒤, 내일아침 검사시간을 예약하고 나왔습니다.

의사는 응급처치 인력이 갖춰지지 않은 가정의원이나 개인병원에서 수면내시경을 시도하는 것은 위험하며, 의사의 기술에 따라 일반 내시경도 얼마든지 수월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의사의 얼굴에서 풍겨나오는 자신감에 나름의 신뢰를 품고 나왔습니다만 검사하러 가기가 점점 두려워집니다.

그것은 혹시나... 비위약한 제가 검사를 마치지 못하면 나의 끈기없음이 경향신문의 나약함이 되고, 대화라도 하다 나의 가벼운 머리가 탄로나면 나의 무식이 경향신문의 무식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걱정 탓입니다.  

<2004.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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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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