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시경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전날밤 이런저런 걱정으로 잠못이룬 나머지, 8시 반이 다 되어서 눈을 뜨고 말았습니다. 순간 ㅂ모의사가 ㅂ모사장에게 "경향신문은 근성이 없어 약속시간에 늦기를 밥먹듯하더라"고 꼰지르는 환상이 보이는 듯합니다. 얼른 쓱삭쓱삭 세수하고 감지못한 머리는 단단하게 묶고 이상하지 않은 복장으로 아파트를 나섭니다.

8시 55분. 9시까지 도착하려면 뛰어야할 시간입니다. 허겁지겁 땀뻘뻘 흘리며 들어가면 안돼... 할수없이 경보자세를 잡고 뒤뚱뒤뚱 속력을 높입니다. 머리에서 혹시 냄새날까 걱정도 합니다.

9시3분. 병원 내부에 진입합니다. 그러나 간호사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름을 묻습니다. 내시경 예약했다고 하니 "겁나서 안오시는 줄 알았어요"합니다. 이런... 당신 모르나본데, 나 기자야...라고 생각하며 눈을 흘겨봅니다. ㅂ씨일가와의 싸움에서 질 수 없다며 전의를 다진 탓에, 간호사에게는 기자고 나발이고 소용없다는 것을 망각하고 맙니다.

잠시 후, 의사가 문을 열고 "내시경 준비합시다" 합니다. 당황한 저는 의연하게 일어나 의사에게 가려했지만 제지당합니다. 주사실로 가야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사실에 앉았습니다. "엉덩이 주사에요" 이쪽으로 누울까 저쪽으로 누울까 고민했더니 "어머~ 긴장하시나봐요. 호호" 기자가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10분 후에 마시는 약을 드릴게요"합니다. 어디서 기다리라는 걸까. 나가라고 안시켰으니 안에서 기다려보자고 생각합니다.

주사실 침대에 앉아있은지 5분, 간호사가 깜짝 놀랍니다. "어머 왜 여기 계세요. 밖에서 티비나 보시지... 긴장하셨나봐요. 호호"

이거 큰일입니다. 기자가 두번이나 긴장했냐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잠이 와서요"라고 둘러댑니다. 그러자 간호사는 깜짝 놀라며 "주사 맞고 벌써 졸린가요"합니다. 얼른 손사래를 치며 "잠이 좀 모자랐어요". 주사실 침대가 자기에 편했다고 스스로 위안합니다.

드디어 먹는 약을 줍니다. "맛은 없어요. 꿀꺽 삼키세요" 나도 맛있기를 바란것은 아니었는데... 나를 뭘로 보나 생각합니다. 조금 있으니 또다른 약을 줍니다. "이건 목젖까지 머금고 있으세요 제가 삼키랄 때까지 삼키면 안되요" 양치질할때 행구는 자세로 의자에 기대 앉습니다. 가글가글~ 해보고 싶었지만 무시당할까봐 가만히 있습니다. 이대로 누워 잠들면 웃길까 생각합니다.

이제 검사실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두구두구~ 떨리는 순간입니다. 입안에 마취약 한번 더 뿌리고 침대에 눕습니다. 옆으로 눞습니다. 평소 옆으로 누워자길 즐기는 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에 호스가 들어가기 좋도록 뭔가를 물고, 심호흡을 하고, 호스를 주입합니다. 눈물이 나려합니다. 참아볼까 하다가 우욱~ 합니다. 그 욱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기자고 뭐고, 경향신문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눈물을 질질 흘립니다.

호스는 혀를 비추고 기도를 비추고 쑤욱 들어가서 십이지장 구멍을 통과합니다. "십이지장에 염증이 있군요" 다시 돌아온 호스는 위의 아랫부분을 비춥니다. 오돌토돌한 엠보싱이 보입니다. "이건 미란성 염증인데 만성화되기 쉽죠" 호스는 다시 쑤욱 올라와 위의 입구와 자신(호스)의 몸통을 비추며 위천장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심하게 충혈됐네요. 딱지도 앉았고..." 호스를 쑤욱 뺍니다. 우웩~ 침이 울컥 쏟아져나옵니다. 눈물도 흐릅니다. 의사는 휴지를 맘껏 쓰라고 권합니다.



여기까지는 내시경이었습니다. 다음은 ㅂ모의사와의 대화 part 1.


"생각보다 전반적으로 염증이 있군요. 기자라서 스트레스가 많은가?"

위천장의 염증은 아스피린 같은 피린계 진통제의 자극일 수 있고, 아래쪽 돌기는 궤양으로 분류된다...
6주간 약을 먹으면서 위산분비를 자극하는 요인들을 멀리하는 것이 좋다...
먹지 말것을 이야기하다보면 한국사람은 먹을 게 없으니 그냥 다 잘 먹어라...
되도록 짜게먹지 말고 스트레스, 약물, 카페인과 알코올을 삼가라. 규칙적으로 식사하라...



여기까지는 내시경 결과에 따른 처방. 다음은 ㅂ모의사와의 대화 part 2.


"저 식사는 규칙적으로 하는데요."

놀라는 ㅂ모의사. "수습때도 식사를 거르지 않았나요?" 자랑스럽게도 나는 말했습니다. "네. 어떻게든 먹었어요"

그는 갑자기 자기 옛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중앙대병원에서 취프 레지던트로 있을 때, 내가 박종철시신을 접수했거든요. 나는 무슨 익사시체인줄 알았어. 119구급차 앞에 타고 시신을 받아서 인도했는데 뒤에 함께 탄 형사 두명이 이미 죽은 시체한테 계속 심장마사지를 하더라구. 담당교수가 '너는 집안 문제때문에 숨어야겠다'며 중환자실로 보내버려서 나중에 집안사람들에게 서운한 소리도 들었지. 특종 놓쳤다고... 그때 중앙일보 수습 여기자가 자주 들락거렸는데 결국 그 사건을 물어가긴 했을거야"



여기까지는 ㅂ모의사의 춤추는 무용담. 다음은 ㅂ모의사와의 대화 part 3.


삘받은 ㅂ모의사: 신강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긴장한 경향기자: 처음에는 개그맨인줄 알았어요. 흐흐~ 맬빵은 후배 누군가가 추천했다던데...

열받은 ㅂ모의사: 아에 안경까지 쓰라고 해야겠어. 외국꺼 그대로 베껴서 말이야...
정색한 경향기자: 신강균기자 자체는 '구악'이었다는 말도 있지만 최근에 문제가 된 몇몇 사례 빼고는 잘 짚어낸 탐사보도가 많다고 생각해요.

실눈뜬 ㅂ모의사: 지금 프랑스 특파원 가있는 MBC ㅎ기자가 내 친군데, 그녀석이 요즘은 나를 보면 할말이 없다고 해요. 내부적으로 뭔가 말못할 사정이 있다면서... 예전엔 MBC랑 친했는데 말야. ㅎ기자 모르나요?
당황한 경향기자: 아, 예. 잘 모르겠네요.

심각한 ㅂ모의사: 월간ㅈ을 봐도 그렇고, 내나이 46인데 나정도만 돼도 세상이 참 걱정되요.
황당한 경향기자: 월간ㅈ을 보신다면야... 당연히 그러시겠네요. 허허허~




병원 대기실엔 스포츠ㅈ과 여성ㅈ과 월간ㅈ이 꽂혀있었습니다. 월간ㅈ 최신호가 없구나 했는데 역시나 ㅂ의사의 책상에 반듯하게 놓여있었습니다. 1주일간 약먹고 다시 찾아갈텐데, 그때 나는 무슨 삽질을 하고, 의사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2004.5.12>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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