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너구리와 곰>
이 병원에는 30대에서 40대로 추정되는 간호사가 두명 있습니다. 둘 다 미모와는 거리가 멉니다. 아마 ㅂ모의사의 아내가 젊은 간호사를 싫어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난번 저의 내시경때 주로 활약했던 간호사는 '너구리'입니다. 외모도 그렇지만 교활하고 능청스럽습니다. (저에게 "당황하셨나봐요 호호호~"를 연발했던 바로 그사람입니다) 나머지 한 간호사는 주로 접수데스크를 지키면서 실수를 연발해 '너구리'에게 욕을 먹곤 합니다. 갈때마다 실수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편의상 '곰'이라고 부르겠습니다.


<19일 수요일>
오전에는 회사일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병원에 가기가 싫어 꾸물대다가 10시 55분에 집을 나섰습니다. 항상 최소시간을 계산하는 '임씨집안내력옹색한시간계산법'에 의하면, 11시 5분에 도착하여, 늦어도 30분엔 병원을 나서서 지하철을 타고, 12시 10분경 회사 후배와 만나 밥을 먹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대기실1>
병원에 들어섰습니다. 아차 싶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열분가량 앉아계십니다. 접수대 앞에 서있는 30대남자에게 '곰'이 말합니다. "검사가 두 건쯤 있어서 적어도 30분은 기다리셔야 할거에요" 박상민이 머릿속에서 "이거참 야단났네~" 노래하지만 태연한척 의료보험증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여성ㅈ 5월호를 집어들었습니다.


<여성ㅈ 5월호>
실연아픔 딛고 브라운관에 복귀했다는 명세빈이 웃고있습니다. 덜렁대는 연기가 어쩌구 저쩌구. 일이 꼬이니 남자가 꼬이고... 성현아가 이쁘게 포즈를 잡습니다. 실제로 보면 이쁘다지만, 기왕 쌍꺼풀 수술할거면 티좀 안나게 하지 그랬냐고 투덜투덜... 탤런트 김지영이 온통 연예인인 시댁식구들과 한복을 입고 설칩니다. 그집 시어머니는 드라마에서 좋은 시엄마, 나쁜 시엄마 다 하던데, 실제로는 어느쪽이려나 고민해줍니다.


<대기실2>
대충 목차에서 몇개만 골라서 읽는데, 아직도 내 차례는 안옵니다. 벌써 11시 40분을 넘어섭니다. 접수해두고 우체국에 다녀온 아가씨가 자기 늦는다고 '곰'에게 따집니다. '너구리'가 순서를 바꿔줍니다. 그 아가씨가 들어가자 이번에는 어떤 아줌마가 저여자는 나보다 늦게왔다고 '곰'에게 딴지를 겁니다. '너구리'가 능글능글 변명합니다.


<진료실>
11시 58분.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의사 (씨익~ 비열하게 웃으며) 어때요, 통증은 없던가요
환자 (쓰윽~ 머리카락 넘기며) 네

의사 (추궁하는 눈초리로) 약은 식전에 먹었나요 식후에 먹었나요
환자 (자신없는 목소리로) 식전에 반 식후에 반 먹었어요

의사 (못믿겠다는듯) 흠~ 하루에 두번 먹긴 했단 말이죠
환자 (틀림없다는듯) 네

의사 (시간이 없다는듯) 별로 이상없죠? 이대로 처방합니다
환자 (이럴순 없다는듯) 아아...예...저...

환자 (머뭇거리며) 저 근데... 내시경하고 이틀후에 구토와 오한 증세가...
의사 (인상구기며) 그럴리가 없는데, 내가 항생제를 쓴 것도 아니고

환자 (주눅들어서) 출근하다 토하고 한나절동안 춥고 그랬는데요
의사 (혼잣말처럼) 다른 원인인가 싶고... 중얼중얼

의사 (껀수 잡았다는듯) 변비나 설사 있나요
환자 (허를 찔려버린듯) 네, 변비가 조금...

의사 (다됐다는듯) 그럼 변비약을 하나 처방하죠, 2주 후에 오세요
환자 (아쉽다는듯) 네

아무리 길게 잡아도 3분을 넘지 않는 진료였습니다. 무려 1시간을 기다렸는데 말이죠. 자기가 심심할 때는 대기중인 손님이 많건적건 자기자랑도 하고 괜히 이것저것 묻더니만, 밥때가 되니깐 입을 싹 씻는 모양입니다.


<대기실3>
기다리는 후배도 있고 하니 열내지말고 가자고 생각하고 나옵니다. 처방전을 주려던 '너구리' 갑자기 씨익~ 웃더니만 기다리는 사람들도 들을 정도의 큰소리로 말합니다. "어머나~ 변비약이 추가됐네요. 호호호호~" 순간 저는... 입이 떡 벌어지고, 동공이 확장된 채로 잠시 굳었습니다.

모욕적이었지만 사실이었습니다. 출근하는 길, 비굴하게 맘속으로 질문하나 던졌습니다. '너구리' 당신, ㅈ일보만 보지!


<2004.05.19>

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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