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음주가무로 바닥지향적이었던 아침,
며칠전까지 아이가 거꾸로라며 걱정하던 만삭의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침에 이슬 비쳤다. 씻고 병원 갈건데 너밖에 와줄 사람이 없어."

심장이 쿵딱쿵딱 32비트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큰 조카를 잘 데리고, 목포에서 올라오실 엄마를 잘 맞으며,
러시아에 가 있는 형부의 빈자리를 잘 채울 수 있을까.

출근 못할 것 같다고 회사에 전화하고
가방을 싸면서 "조카조카조카" 귤 8개를 주워담고
며칠 집 비울 사람마냥 빨래를 건조까지 돌려놓고
김군에게 찌개 잘 데워서 밥먹고 다녀라 신신당부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화곡동에 있는 병원을 향해 지하철을 타고 가서
이제 버스만 타면 된다 하는 순간, 전화가 왔습니다.

"병원에서 진통 시작할 때까지 기다려 보자네.
 저번에는 이슬 비치자마자 오라더니... 
 출근해라. 진통 오면 바로 전화할게."



출근은 했지만 오죽 불안해야죠.
선배에게 노보 맡기고
후배랑은 지면 바꾸고...
일찍 일을 끝내놓고 호출만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
2시 40분 기차를 타셨어야 하는 엄마는
짐을 바리바리 싸다 늦어서
다음 기차를 타시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어요.



오후 4시반이 넘어가자 점점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이 아닌가벼 싶자마자
졸립고 삭신이 쑤시더군요.

그러던중 걸려온 전화. 언니였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긴장하고 전화를 열었는데

"눈 많이 오니까 엄마 모시고 올 때 지하철 타고 와라.
 나는 오늘은 넘길 거 같어."



우흨, 꽝이었습니다.
왜 나를 겁준 거냐고 물었지만 언니는 "나도 몰랐다야~"
알고보니 제가 초긴장상태로 일하고 있는 동안
언니는 과외도 하고 있었답니다.

하루 휴가냈는데 내일도 조카가 안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엄마를 모시러 가는 쏘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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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쏘뎅
쏘뎅+기자=쏘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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